♣。문학 삶의향기 ·····♣/시 낭송

사평역에서(낭송시)

무정애환 2010. 12. 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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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平驛(사평역)에서 

   


   沙平驛(사평역)에서 - 詩 : 곽재구
작곡 : 유종화, 낭송 : 박종화

   


    沙平驛(사평역)에서 - 詩 : 곽재구

    작곡 : 유종화, 낭송 : 박종화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읽고 듣습니다.
    사평역은 세상에 없는 간이역입니다.
    화순읍에서 고흥 방면으로 가는 국도 제15호선을 따라 15km를 가면 사평리에 이르는데,
    정확히는 광주광역시와 인접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소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기차역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평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3등 완행열차가 바쁠 것도 없이 쉬엄쉬엄 쉬어가는 오래 묵은 시골 간이역입니다.

    고여오는 슬픔을 안고 사람을 말없이 사랑하는 그렇게 삶을 지속하는 욕심없는 사람들이 기침소리와 한 줌의 톱밥으로 삶을 나누고 버티어 주며 뭔가 기다리는 공간입니다.
    단풍잎 같은 차창을 달고 올 우리들의 나라, 뼈를 깍는 추위도 가림없이 덮어주는 눈밭같은 나라, 그 나라를 어쩌면 아주 많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사평역에서> 내용 정리
    * 주제 : 삶의 애환

    ● <사평역에서> 이해하기

    이 시는 삶의 애환을 비극적 서정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시어들의 이미지는 쓸쓸한 소멸과 정처없는 떠돎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막차'가 주는 소멸감. '눈 시린 유리창', '청색의 손 바닥'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에 실려 삶의 행로가 단풍잎처럼 흩어져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의 화자와 등장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다.
    밤늦게 막차를 기다리며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에 지친 군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피곤에 지쳐 조는 모습, 감기에 걸려 쿨룩거리는 모습, 침묵하는 모습들에서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깊은 응시 속에서 통찰한다.
    '그리웠던 순간'과 현재는 상반된다.
    그리웠던 때는 따뜻함이 있었던 시절이며, 현재는 외로움과 수고로움에 지친 차가운 계절이다.
    과거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톱밥 한 줌을 난로 속에 던져 주는 화자의 태도는 휴머니티에서 연유한다.
    그러므로 화자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주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삶에는 그런 휴머니티, 다르게는 행복이 결핍되어 있다고 본다.

    삶이란 그대로 술 취한 듯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굴비와 사과를 초라하게 들고 떠나는 고향. 고향으로 가는 마음이 기쁨에 들떠 있어야 하는데도,
    이 시에서의 고향은 지친 영혼의 쉼터로서 그려진다.
    서글픈 삶의 여정에서 그나마 위안을 받으러 말없이 떠나는 고향길.
    그 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고달픈 모습.
    그들의 지나온 이력들은 이처럼 고단한 것이다.
    삶이란 기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낯설고 고통스런 세상이 설원이라면,
    그속을 쓸쓸히 달리는 기차는 우리의 인생 역정이다.
    그 인생은 물론 단풍잎과 같이 작고 초라하며 쓸쓸하다.
    그런 삶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나약한 군상들과 화자는 결국 같은 존재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슬픈 모습에 눈물을 짓는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서글프고 고단한 것이다.

    송승환, 한국 현대시 제대로 읽기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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