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삶의향기 ·····♣/감동·좋은글
아빠의 눈물명지가 열 다섯살때였다 명지의 가족은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경포대로 갔다. 바다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물 위를 비행하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은빛으로 출렁거렸고바다 끝 수평선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푸른 빛으로 넘실거렸다그곳에서 아름다운 나흘을 보내고 마음은 그대로 남겨둔채 몇지네는 경포대를 떠나왔다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그 사고로 명지는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그날 이후로 병지는 보조다리 없이는 몇걸음도 걸을 수 없게 되었다 . 불행은 명지 하나에게만 그치지 않았다명지보다는 덜했지만 명지의 아빠도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그 후로도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명지의 아빠는 하시던 약국을계속 경영했다. 명지는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의 열등감에시달렸다 명지가 밥도먹지않고 책상에 옆드려 울고있을때위안이 되어준 사람은 오직 그녀의 아빠뿐이었다물론 그녀의 엄마도 늘 위로와 결려를 보내주었지만, 엄마가 해주는 위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때가 많았다정신까지 절룩거리는 명지에게는 정상인인 엄마가아무리 큰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하지만 명지 아빠는 달랐다 누구보다도 명지의 마음을 잘 알고있었기 떄문에 차마 말할 수 없는 명지의 아픔까지 아빠는 낱낱이알고 있었다길을 다닐때 명지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빛이 싫어서늘 땅만 쳐다보며 다녔다. 어느 겨울엔가는 얼어붙은땅 위를 걷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이 온통 까진 채 아빠의약국으로 간적도 있었다명지는 아빠의 품에 안겨서 한없이울었다"아빠,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는게 너무 싫어" 명지야,아빠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 같은거야그걸 알고 나서 아빠는 오히려 그들의 눈빛이 고맙기까지 한걸명지 아빠는 조심스럽게 명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약을 발라주었다그의 붉은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아빠는 우리 명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그런데 아빠 말 좀 잘들어 봐 물론 아빠나 명지가어쩌면 그들보다더 불행할지도 몰라.그렇지만 우리의 불행을 통해서사람들이 위안을 받을지고 모르잖아.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거구...명지야,조금만 더 견뎌,아빠가 네 곁에 있잖아그 후로도 명지 아빠는 명지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들어와 언제나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빠의 사랑으로 명지는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고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식 날 그녀의 아빠는 명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명지 역시 자신의 아빠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입학식장에서 아빠는 두 개의 보조다리에 몸을 기댄 채 가슴 가득 한다발의 꽃을 안고 있었다입학식을 끝내고 나올때 그들의 눈앞에서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여졌다차가 다니는 도로 쪽으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앞서 걸어가던 명지의 아빠는 그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명지의 눈앞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어나고 있었다명지 아빠는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명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아빠가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빠?명지는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 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벼렸다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거...하지만 명지 엄마의 얼굴은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명지야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언젠가는 너도 알게 외리라 생각했어.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그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사 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거야너 혼자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고... 성한 몸으로는 누구도 아픈 너를 위로할 수 없다고 말야왜 그랬어? 왜, 아빠까지...명지는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울지마 그렇게라도 하지않았으면 아빠는 견디지 못하셨을거야불편한 몸으로 살아오시며 너를 위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오늘은 그 어린것이 교통사고로 너처럼 될까봐서..멀리 보이는 명지의 아빠는 여전히 보조다리에 몸을 의지한 채 빠른 걸음으로걸어가고 있었다그를 보고 있는 명지의 분홍색 파카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흘려내렸다명지가 방황할 때마다 그녀의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다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코 하나의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는 거야슬픔도 그리고 기쁨까지고...힘겨워도 견디고 또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슬픔도 아름다운 노래가 되거든...마음이 아픈 날이면 명지는 늘 아빠 품에 안겨서울었다그때 마다 소리내어 운것은 명지였지만 눈물은 명지의 아빠 가슴속으로 더 많이 흘러내렸다.-이철환의 연탄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