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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탈북 수기) “누나야, 언제 오니...” 갈대밭 속 굶어죽은 동생

무정애환 2011. 1. 11. 16:22

  “누나야, 언제 오니...” 갈대밭 속 굶어죽은 동생

 

 

 

할머니는 동생을 어머니의 품에 돌려주었지만 배가 고파 어머니의 젖을 파며 젖이 나오지 않아 울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울고 있을 때 집의 옷을 팔아 쌀 1kg라도 얻어오겠다던 언니는 강도들을 만나 다 빼앗기고 겨우 살아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물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는 인민반장 아주머니가 콩 20kg을 줄 테니 이 콩을 120리 밖의 시내에 가서 팔아 벽지와 천장지를 사오면 쌀 5kg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언니는 나의 손을 잡고서 내일 밤 12시라도 돌아올 테니 어머니와 할머니, 동생들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며 떠났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7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해산한지 일주일이 된 어머니는 언니를 찾아 120리 길을 떠나면서 동생을 내 품에 안겨준 채 돌아올 때까지만 참고 살아라고 했습니다.

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안전원과 보위부 지도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쌀 500g만 꾸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남한 개들의 종자는 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면서 얼굴에 침을 뱉었고 아버지를 두고 나라의 반역자라고 욕을 하면서 빗자루로 때리며 쫒아냈습니다.

결국 동생은 풀물을 먹다 못해 나의 가슴을 헤쳐 뜯으면서 먹을 것을 찾다가 굶어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언니가 중국에 팔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에까지 가서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한 채 우유가루 두 봉지와 쌀 한 자루만을 메고 집에 돌아오셨지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울다가 중국에 갔다 온 사실이 안전원들의 감시에 걸려 잡혀 갔습니다. 가져온 것을 다 빼앗긴 채 할머니는 나의 옆에서 환상 속에 보이는 삶은 감자 한 알을 먹고 싶어 하시다가 결국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감옥을 탈출해 집에 돌아왔고, 고문으로 인해 터진 머리에서 피를 물처럼 수건으로 짜냈습니다.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맞아 운신을 할 수 없어 두 달을 누워서 계셨지만, 거의 죽어가는 우리를 보시고는 남은 자식마저 죽일 수 없다며 초인적인 힘으로 우리 셋을 데리고 중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나는 5살 동생을 업고 6살 되는 동생의 손을 잡은 채 겨우 운신하는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10리를 걸었지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발 없는 발에서는 피가 났습니다. 울면서 낯선 집에 들어가 5일만 남동생을 봐달라고 부탁하면서 동생에게 다섯 밤만 자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도 동생의 말이 귀에서 쟁쟁합니다. “둘째 누나야. 왜 막내 누나는 데려가면서 나는 안 데려가니?”라고 말하던 동생에게 “국철아, 어머니는 쌀을 메고 누나도 쌀을 메고 나면 사탕과 과자는 막내 누나가 메야 하니 빨리 갔다 올게”라고 하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한 달 만에 중국에서 되돌아가려고 두만강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 건널 수도 없었지만, 더 막막한 것은 선거에 참가하지 않은 자는 총살을 하라는 김정일의 명령이 내려져 돌아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달 후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남동생을 데려와 달라고 했더니 심부름꾼은 이런 기막힌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남동생을 봐주던 집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밖에 내보내 버렸고, 결국 남동생은 바람 부는 갈대밭에서 “누나야, 언제 오니...” 찾으면서 굶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빠는 물에 빠져 죽고, 우리 여섯 형제의 운명은 이렇게 끝이 났고, 우리의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안들의 눈을 피해 밤에는 땅굴에서 숨어 자면서 개미와 모기에게 뜯겼습니다. 낮이면 남의 밭김을 매주었으며, 밭 주인에게 삯돈을 달라면 내일 주겠다고 하고는 쌀 한 그릇만을 주고 끝이 났습니다.

만약 가서 돈을 달라고 하면 공안에 신고를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숨어 살다가 우리는 4차례 강제 북송을 당했지만, 돈을 비닐에 감아가지고 삼키고 나갔기에 더럽지만 변으로 나오면 그것을 주워 안전원에게 주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잡힌 보위부에서는 한국에 가려다가 붙잡힌 탈북자가 80%였습니다. 그들은 일자리를 해주겠다고 해서 떠났는데 잡히고 보니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죽도록 맞으면서도 끝내 부인한 사람들은 6개월~1년의 노동단련대라는 감옥에 가둬졌으며, 병을 만나지 않고 굶어서 죽지 않으면 살아나와 다시 탈북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사실을 말 한 사람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향에 남아서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노라면 자본주의를 따라하는 행위를 한다고 빼앗아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경제범, 도둑놈, 살인범으로 몰리고, 또 이놈의 나라를 한탄하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 가서 죽고, 그래도 죽기 전에 쌀밥 한 그릇이라도 먹고 죽자 라고 생각하고 두만강을 넘다가 물에 빠져죽고, 여자들은 이리저리로 팔려 다니다가 병에 걸려 죽고, 또 달아나다가 잡혀서 맞아죽고, 이래죽고 저래죽고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탈북자입니다.

정말 명이 긴 사람들은 한국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자유를 얻어 저처럼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현명한 방법을 아시면 가르쳐주세요.

“오늘도 장군님은 백성의 안위를 위해 끼니도 거른 채 시찰을 나갔다. 옥수수밥을 뒤로 미루시며 ‘앞잡이 남한 놈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성들이 죽을 먹는데 내가 어찌 밥을 먹을 수 있겠느냐’면서 잠도 못 이루시는 장군님. 한국은 왜 조선 백성들을 죽이려고 안달인가? 왜 자꾸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가? 왜 자꾸 간첩을 보내 불쌍한 백성들이 먹는 음식에 유리 가루를 넣는가?” 이것이 북한 정부가 백성들에게 가르쳐준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국 분들 정말 그렇습니까? 자유를 찾은 내가 아는 한국 분들은 인자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니다.

저는 이렇게 알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김정일이 너무 잘 먹어서 당뇨병이 걸리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동맥경화에 걸려서 앓고 있다는 사실, 한국영화를 본 사람들을 나라의 반역자로 몰면서도 김정일 그 자신은 한국의 유명한 배우를 좋아하며 그 영화를 본다는 사실,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하려고 하는 부부들을 징벌하며 사회에서 생매장 시켜버리는 김정일이 여자를 수없이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 등등.

김정일이 이러한 악독한 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이 알고, 군인들도 알아 모두가 정신 차려 떨쳐 일어나 자유와 생명을 위해 노력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감옥에 있으면서 중국 돈 백 원에 김정일의 아내들의 사진, 그리고 그가 먹는 상어 지느러미 만찬 사진을 넣어 집집 앞에 끼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데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더 머리를 써서 고무풍선으로 삐라를 날려 보내는 것을 보고는 기쁘고 좋아서 나도 가고 싶었지만, 비행기 표를 살 수 없어 동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까요?
 
( 모셔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