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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겨울에 사나흘만

무정애환 2011. 1. 26. 00:47

 

하얀눈속에 사나흘만

 
며칠 전엔 화단에 목련꽃이 
수줍은 듯 첫새벽에 작은 봉오리를 내밀어 
겨울을 건너 뛰어가는 빠른 시간의 흐름을
원망하였던만
반백을 꺾어 도는 젖은 인생길에 
오늘은 쉬어가라는지 
어제 오후부터는 옷깃을 추스르게 하는 
찬바람을 동반한 눈발이 흩날린다
기왕에 올 눈이라면 
아직은 시절이 봄을 시샘하는 겨울인만끔 
무언가에 쫓기고 쫓아가듯 바쁘게만 내달리는 
저 짙은 회색도로를 한 사나흘쯤만 쉬게 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꽃을 흠뻑 머금게 하여
갈색과 회색빛 도시를 백설의 풍성함으로만 
한 사나흘쯤 덮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복잡하게 뒤엉킨 세상속의 
삶의 키 재기를 잠시 뒤로하고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 적막을 찾아
쇠죽 굼불 오-지게 뜨셔놓은 
짚 냄새 풀 냄새 가득한 사랑방에다
고향 떠난 동무들 다 불러 솜이불에 
발 모아 넣고 연놀이 쥐불놀이 단자놀이
얘기에 
어느 여름밤의 벌거숭이 
수박 참외서리와
각시바위 개바위 용머리에 얽힌 전설 따라
삼천리도 얘기하고 석가래 또아리 틀고 있는
검은 구렁이 얘기도 들어보자
저녁이면 초가처마 밑에 살그머니 손을 집어넣어 
따뜻하게 손안을 퍼덕이던 참새 잡이도 하며 
배고플 땐 울목에 고구마도 벗겨먹고
우리 어머니 소문난 살얼음 떠있는 
동치미도 마시며 이미 가버린 세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공일지라도
한 사나흘만 그곳에 머물고 싶다.
오늘처럼 눈 시린 밤이면  
우리 어머니 길고긴 한숨 소리는 문풍지를 울리고 
동지섣달 긴 긴 밤을 자식걱정으로 지새이시던   
내 어린 날의 설움과 연민이 탄식되어
젖은 낙엽에 눈 쌓이듯 사박사박 
빈 가슴을 적신다
2011년  1
오솔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