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色エレジー-あがた森魚 作詞 あがた森魚 作曲 八洲秀章
愛は愛とてなんになる 男一郎 まこととて 幸子の幸はどこにある 男一郎 ままよとて 昭和余年は春も宵 桜吹雪けば情も舞う
寂しかったわ どうしたの お母様の夢見たね お布団もひとつほしいよね いえいえ こうしていられたら
あなたの口からさよならは いえないことと思ってた はだか電灯 舞踏会 踊りし日々は走馬灯
幸子の幸はどこにある 愛は愛とてなんになる 男一郎 まこととて 幸子の幸はどこにある 男一郎 ままよとて 幸子と一郎の物語 お涙頂戴ありがとう
歌の背景 이 曲은, 林静一의 劇画「赤色エレジー」가 主題로 되어 있습니다.「赤色エレジー」는「月刊漫画ガロ」(青林堂)에 1970年 1月号에서 다음 해 1月号에까지 連載되었습니다.
昭和40年代 後半의 東京을 舞台로, 漫画家의 タマゴ・一郎와 トレーサー・幸子의 앞이 안 보이는 同居 生活을 그린 名作입니다. 連載가 終了된 1971年, 이 曲이 태어나 中津川에 있어서의 第2回 Folk• Jamboree에서 演奏되었습니다.
이 때의 録音版이 林静一의 illust 添附로 幻燈社로부터 発売되었으며. あがた森魚에 依해서, 첫 레코드化였습니다. 다음 해 1972年, 메이저•데뷔. 昭和40年代부터 50年代 中半까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보여진 언더 그라운드的 무드를 背景으로 하여 크게 히트 하였습니다. 大히트로부터 3年 後에, 映画版「赤色エレジー」가 만들어졌습니다.
実은, 이 노래가 成立된 由來에는 大正後半에서 昭和初期의 東京을 舞台로 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華族인 大財閥의 令嬢가 窮乏한 文学青年인 左翼青年과 사랑에 빠져 権威主義的인 父親의 뜻을 拒逆하고, 同居 生活에 들어갔지만, 困難한 生活이 繼續되어, 두 사람의 關係는 漸次 變質하기 始作한다……고 하는 스토리입니다.
아마 그런 느낌의 小說을, あがた森魚는 여기에서 이미지를 부풀린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林静一의 劇画가 発想 源임을 알고 나서, 單行本을 읽었습니다만 다 읽어도, 最初의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男一郎ままよとて」「はだか電灯舞踏会 踊りし日々は走馬燈」「お涙頂戴ありがとう」라고 한 懐古趣味와 Romanesque인 이미지는, 어떻든 大正時代나 昭和初期의 것입니다. 林静一의 劇画는, 어느 쪽인가 하면 纖細하고 淸潔한 印象으로, 이 노래의 歌詞나 멜로디로부터 자아내지는 이야기는, 오히려 稀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作曲者는 八洲秀章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赤色エレジー」의 맨 처음이 八洲秀章 作曲「あざみの歌」의 멜로디 라인과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納得이 안되네요.
그런 經緯가 있음을 알기까지, 그 類似性을 깨닫지 못하고, 八洲秀章는 대단히 넓은 感性을 가진 作曲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程度의 類似性을 가지는 編成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著作權에 얽힌 裁判을 하여도 틀림없이 지게 되는 케이스이지요. 第一먼저「赤色エレジー」의 概念은, 抒情的인「八洲ワールド」란 根本的으로 差異가 납니다.
あがた森魚의 自主規制인가, 製作者로부터의 要請에 依한 것일 까는 모릅니다만, 所用없는 配慮였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낼 수 없는 事情이 무엇인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