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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Inocence - Ordo Funebris

무정애환 2011. 9. 5. 19:32



 

 


 

 

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최정례


갯벌에 꼬물대던 작은 게들이
갑자기
천지개벽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정지한다

나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 없어
너희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도
찜쪄 먹을 계획도 없다구

그래도 꼬물거리던 그들은 내 기척에
기겁을 하고
눈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뻘 저 편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척 게눈을 뜨고 내 눈치를 살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그들이 내 발길을 피해
일제히 재빠르게 몸을 옮길 때
순간의 무수한 게걸음에
수평선이 빙그르 도는 것 같다
아찔하다
하늘은 뻘로 바다는 하늘로 뒤집힌다

난 바람을 쐬러 방파제를 걷는 것뿐인데
바람이 옷자락을 펄럭일 뿐인데

섭섭하다
나도 죽은 척 서 있었는데
게들이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죽은 척 살아서 내 눈치를 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