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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노래의 힘 - 서정과 서사 아우르는 호소력 있는 여가수

무정애환 2011. 9. 11. 02:00

서정과 서사 아우르는 호소력 있는 여가수
이정미 노래의 힘 

 

김형찬(대중음악연구가)   

 

▲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돌아보면 과연 이 정도의 호소력을 가지면서도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여성가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이정미라는 여성가수를 눈여겨 탐색할 필요가 있다. 

 

2006년 9월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었던 재일동포가수 이정미의 공연이 지난 1월24일 홍대앞의 요기가갤러리에서 열렸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닥친 겨울밤 어렵게 찾은 지하공연장을 들어서니 이미 낯익은 이정미 카페회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자연스럽게 마감한 갤러리는 자연에코가 이루어져 마이크로 소리만 조금 키우는 최소한의 음향시설로 마치 안방과 같은 공연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정미가 팬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따뜻한 허브차는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포근하게 해주었다.

 

이정미 2009년 1월 24일 공연실황 4곡 이어듣기

 

여신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흰 무대의상을 입은 이정미는 사쿠마 준페이의 어쿠스틱기타 반주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발표되었던 이정미의 대표곡 <나는 노래하네>와 <케이세이센>으로 공연의 문을 연 다음 지난해 12월 5년 만에 발표된 3집 「지금 여기에 있어요」에 수록된 <안타까움 저 너머>를 부르면서 지난 해 50세를 맞이하여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오랜만에 새 음반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들려준 <고마워라 삶이여>는 칠레의 여성 민중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부른 곡인데 이정미가 이 곡에 깊이 공감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방황할 때 일본의 시인 아마오 산세이의 <기도>를 듣고 넘치는 노래의 욕구를 느꼈던 그 시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인도에 가서 배운 땀부리 라는 악기를 천천히 연주하며 오랫동안 자신에 몰두했다.

 

고마워라 삶이여 - 이정미

 

▲ 여신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흰 무대의상을 입은 이정미는 사쿠마 준페이의 어쿠스틱기타 반주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중간에 게스트로 등장한 기타리스트 김광석이 기타리스트 사쿠마 준페이의 연주를 극찬했다. 일본 포크음악의 개척자인 그는 다양한 장르의 어법을 구사하며 곡마다 적절한 표현으로 혼자만으로 능히 연주회를 감당했다. 그는 김광석과 함께 김광석이 이번 3집에 발표한 대표곡 <은하수>와 <행복>을 연주했다. 김광석의 지극히 간결한 선율의 <은하수>와 <행복>은 추운 겨울밤 홍대앞 오막살이에 모인 음악동네사람들을 은하수 저편으로 날아가게 하는 행복한 꿈을 꾸게했다.

 

그로부터 이천년 - 이정미

 

후반부에 불렀던 <그로부터 이천년>은 미국이 어느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전쟁지역의 사람들을 두고 기쁜 새해를 맞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작곡했다고 했다. 이 곡의 코러스는 평소 이정미가 한국에 공연 올 때마다 전 과정을 돌보아주었던 이정미 카페회원들이 음반녹음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때의 회원들이 상당수 공연에 참석하여 실제로 간단한 수화와 함께 즉석 코러스를 연출하여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이정미는 존레논의 <이매진>을 자신만의 독특한 호흡으로 재탄생시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매진 - 이정미

 

▲ 이정미 노래의 힘은 그녀가 서정과 서사라는 폭넓은 세계를 두루 아우르면서 자신의 독특한 호흡으로 청중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그녀의 노래를 통한 자아찾기는 자기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온생명과의 소통을 지향한다.

 

이정미의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녀가 갖는 노래의 힘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이 노래의 힘은 그녀가 서정과 서사라는 폭넓은 세계를 두루 아우르면서 자신의 독특한 호흡으로 청중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에서 나온다고 느껴진다. 그녀의 노래를 통한 자아찾기는 자기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온생명과의 소통을 지향한다. 또한 사회에 관한 얘기를 할 때에도 청중의 감수성을 깊은 곳에서부터 건드려나가기 때문에 청중은 노래속으로 저절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 그녀의 창법과 호흡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리듬감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발성을 끌고가다가 적절한 순간에서 놓아버림으로써 청중은 관성에 이끌려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는데 이렇게 발생하는 리듬감은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와 같은 리듬감을 발생시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해준다.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돌아보면 과연 이 정도의 호소력을 가지면서도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여성가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 여성가수들은 서정적인 감수성의 호소에는 탁월하지만 서사적인 얘기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민중가요 쪽에서 서사를 노래하는 가수들은 있지만 서정적인 호소력의 내공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이정미라는 여성가수를 눈여겨 탐색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 - 이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