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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의 노래 / 김추자. 송창식. 박강성. 소냐.

무정애환 2012. 1. 29. 22:46

 

 

" 불후의 명곡 2 "

 

'불후의 명곡'에서 소냐가 '상아의 노래'를 열창했다

더군다나 불후의 명곡 절대강자라는 알리를 물리쳤다

알리 역시 '피리부는 사나이'를 열창했지만 소냐의 열창에

무릅을 꿇어야했다. 그럼 지금 흐르고 있는 김추자의

'상아의 노래'를 먼저 감상하시고, 소냐의 경연모습은 물론

송창식 박강성 노래도 준비돼 있으니 즐감하시길...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한쪽은 아슬아슬하게 패인 드레스를 입고 출연한 소냐는

뮤지컬 배우답게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였다. 노래를 들은 송창식은 탄탄한 기

기로 심도있게 연습한 게 보인다며 극찬을 했다.노래 중간에 지기독이 출연하

여 랩을 가미하여 색다른 편곡이 좋았고, 소냐의 가창력과 완벽한 고음처리는 소

름을 돋게 할 정도였다. 노래하기전 긴장을 했는데 지금은 어쩌냐는 MC 신동엽

의 질문에 소냐는 '긴장이 풀렸다. 배도 고프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그럼 알

리에게 양보하고 빨리가서 빵이라도 먹고 싶냐'는 신동엽의 질문에 '누가 빵좀 가

져다 주면 좋겠다'는 센스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결국 명곡 판정단은 알리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닌 소냐의 '상아의 노래'를 선택했다.

 

상아의 노래

 

바람이 소리없이 소리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여인인가 짝 잃은 여인인가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 ~  아~ 못잊어 아쉬운 눈물에 그날 밤

여자만이 울어야 하나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 ~ 아 ~ 못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

여자만이 울어야 하나

 

 

김추자

 

     

              박강성                

 

송창식

 

 

상아의 노래

 

바람이 소리없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여인인가 짝잃은 여인인가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 ~ 아 ~ 못 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

 

바람이 소리없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여인인가 짝잃은 여인인가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 ~ 아 ~ 못 잊어(못 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에) 상아 혼자 울고 있나

( 바람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소냐    재생버턴을 눌러 주세요

 

 

상아의 노래

                             채풍작사 / 김희갑 작곡 

    바람이 소리없이 소리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여인인가 짝잃은 여인인가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 ~ 아 ~ 못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


1969년에 채풍 작사 김희갑씨가 작곡하여 송창식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상아의 노래'를 처음 부른 사람은 이미자였는데
트로트풍의 노래만 불렀던 이미자씨는 곡을 받은 다음에도
판을 내자는 말도 하지 않아 다시 드라마 주제가로 넘어가
송창식이 마이크를 잡았답니다.

 

송창식은 이 노래 때문에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네요.
80년대 지방공연을 갔다가 공연이 끝난 뒤 신청곡을 받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때 관객이 신청한 노래가 '상아의 노래'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당시 '상아의 노래'의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 결국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오고
말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요즘 7,80 년대 추억 바람이 부니 윤형주가 다시 트윈 폴리오를 하자는

제의에 노래방 저작권료로 한 달에 1000 여만원이 들어 오니 먹고

살 걱정 없고 음악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은 우리 나라에 단 한 명도

없다며, 돈을 벌기 위해서 더 이상 앨범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15년이 넘도록 일체의 새로운 앨범 작업도 하지 않고, TV에도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고 지방을 돌며 제한적인 라이브 콘서트 무대에만 선다는 송창식.

'오전 5시 취침, 오후 2 ~ 3시 일어나 몇 시간 운동'이라는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기인(奇人)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악이든 생활방식이든 모든 점에서 송창식은 '둘도 없는 사람'이다.

음악은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창적 세계를 드러낼 뿐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 또한 범인(凡人)의 그것과 크게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와 절친한 가수 조영남은 송창식을 가리켜 “일반적인 잣대로는 풀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독자성의 광채를 발하는 비범한 음악'

그리고 '별난 사람', 그 말이 송창식을 축약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낭만파 시인' '저잣거리의 현자(賢者)'와 같은 그럴듯한 것들도 있지만

밤에만 활동한다고 하여 '밤창식' '별창식' 그리고 모든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해서 붙은 '왜창식'이란 별칭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들은 한마디로 '기인(奇人)'임을 말하기 위한 곁가지 수식들 아니던가.

 

송창식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0년대 우리 가요계를 완전 정복한

주인공이다.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상징된 그 시대 포크문화를 대표하면서

그의 노래들은 모든 세대와 계층의 가슴에 메아리쳤다. 대학생들은 저항의

찬가인양 '고래사냥'을 목놓아 외쳤고 동네 코흘리개 아이들도 마냥 '왜 불러'를

따라 불렀으며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도 '상아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로트에서 느끼는 구수함과 애절함을 맛보았다.

 

무척 잘 생긴 얼굴도 아니었지만 듀오 트윈 폴리오 시절 부른 '하얀 손수건'은

그를 '여학생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로 만들었고 대중가요를 외면한 고매한

사람들마저 가곡 풍의 '그대 있음에'에 감동했다. 그가 포크가수 가운데 유일하게

방송사의 가수왕(1975년) 자리에 오른 것도 그처럼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광대한 흡인력 때문일 것이다. 국민가수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국민가수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1980년대가 조용필시대, 1990년대가

서태지시대라면 '1970년대는 송창식시대였다'는 규정은 아주 자연스럽다.

 

이에 가수 박강성이도 선배에게 질세라

'상아의 노래' 목놓아 크게 불러 봅니다 

 

     

              상아의 노래 - 박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