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삶의향기 ·····♣/고은하 시낭송

고향의 하루 - 허재영 (낭송:고은하)

무정애환 2012. 2. 11. 19:34


고향의 하루 - 허재영 (낭송:고은하) 꿈속에 고향을 간다. 빛 바랜 버스가 먼지를 쏟아놓고 내뺐다. 아이들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돌아서서 먼지를 피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욕도 안하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길을 간다. 달이 밝다. 일곱 여덟 명의 아이들이 앞산 묘 벌에 모였다. 소곤 소곤 하더니 금새 원을 만들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막내가 눈치를 본다. 힘센 아이의 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제 곧 올라타서 목을 조르는 고상 받기 놀이가 시작된다. 밥을 먹는다. 상은 두 개, 식구는 아홉이다. 젓가락, 숟가락만 왔다 갔다 할뿐 정적이 흐른다. 밥 먹을 때 말하면 복이 나간다는 엄명은 수 십 년째 지켜지고 있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놓고 나가신다.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가물다가 오랫 만에 비가 왔다. 동네가 시끌벅적 분주하다. 삽을 들고 괭이를 메고 집을 나간다. 철부지 한 녀석이 찌그러진 우산을 들고 비를 즐기러 나갔다가 울면서 돌아온다. 가뭄에 오는 비에 방정맞게 우산 들고 다닌다고 욕을 먹었다. 엄마는 수건을 동그랗게 말아서 머리에 얹었다. 큰 항아리를 머리에 얹고 한참이나 달린다. 몇 발이나 되는 뜨레박 끈을 내려서 물을 퍼 올렸다. 물을 찔끔 찔끔 흘리면서 돌아온다. 굴뚝의 하아얀 연기가 저녁 짓는 것을 알린다. 엄마는 마루에서 국수를 말고 있다. 좀처럼 끝이 나질 안는다. 아이는 국수를 썰고 있는 엄마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엄마의 선처를 바랄뿐이다. 엄마가 주는 국수 꼬리 한 조각을 들고 부엌으로 달린다. 호롱불이 그을음을 내고 있다. 몇 신지도 모른다. 아무도 잠자리를 보는 사람이 없다. 할머니가 중얼중얼 할 분이다. 어른이 돌아오기 전에는 잠자리에 들면 안된다는 수백년의 규칙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오신다. 손주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쳐다본다. 할아버지가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