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를 버리고 싶다 / 이문주
가슴이 허전해지는 날은
바람이 뚫고 지나간 빈 가슴
무엇으로라도 메우고 싶은데
소리 없이 내리는 해 그림자 보면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음을 느끼지만
스산한 바람은 내 몸을 비켜가지 않는다
온몸은 피곤과 한숨으로 지쳐있고
푸르던 하늘가엔 이름 모를 별빛 하나
떠도는 구름이면 좋겠다
나이를 잊고 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내가 내 나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누가 나를 알아줄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진 마음 사이로
포근한 느낌 하나 찾아들면 좋으련만
가슴은 채워지지 않고
희멀건 가로등 불빛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제 같은 느낌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는데
엉겹의 세월이 쌓였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쳐져버린 두 어깨
언젠가 나이 들기를 기다렸지만
그게 아닌 것을 되돌려 보낼 수 없는 세월
젊음이 내 안에 기억 잔재처럼 남아 있어도
부질없는 추억이다
어느 날은 휘청거리다 넘어지면서도
쉬임없이 달려온 길에 남겨진 슬픔이
내 나이를 가져 가버렸나 보다
그 옛날 이 나이가 된다면
나의 삶은 행복할거라고 철석같이 믿었건만
내 나이가 나를 앗아가고
내 나이가 나를 세월에 덮어 버렸는지
뒷전에 밀린 채 인내의 열매를 따게 한다
갈수록 나의 삶은 거친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처참하게 부서지는 내 몰골만 남긴다
당연히 깨어질 줄 알면서도
뛰어들어 부딪쳐야 하는 가냘픈 인생
여전히 세상의 파도는 높기만 하다
내 나이를 이제 거두고 싶다
해질 무렵 노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
나 혼자 느끼는 진심일까
바람은 고요하지만 코 끝이 시리다
어둠에 가려져가는 시간처럼 숨어 버리고 싶다
내려다 본 창가를 뛰어 내리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번쯤 스친 생각이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겠지만
인내하는 마음이 벽에 부딪친 날
내 나이를 인정하고 사라지고 싶다
흔들리고 싶은 날 바람은 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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