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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같이 바람같이

무정애환 2010. 12. 23. 11:20

 


서산대사 시비 (西山大師 詩碑)
이 보게 친구!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밷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밷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 쥐려고만 하시는가 ?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 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千) 가지 만(萬)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이 소가 물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 지는구나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던 
서산대사께서 85세의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위와 같은 시를 읊고 나시고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잠든 듯 
입적 하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