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삶의향기 ·····♣/감동·좋은글

내 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정애환 2011. 1. 2. 12:30

 

 


 
    오늘도 나는 대문 밖을 나가보지 못했다. 누구 도움 없이는 나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집밖을 나가 본 것도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내 손발이나 다름없는 어머니께서 11개월 전 중풍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을 빼놓고 매일같이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어머니! 내가 태어나 한참 어머니가 그리울 때부터 오늘날 까지 내 옆에서 아름다운 모성애를 느끼게 해준 지금의 어머니와 나는 기구한 운명의 만남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대충 34년 전쯤으로 생각이 난다 나를 낳은 어머니께서는 내가 한참 옹알이를 할 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다. 아버지와 나 단둘이서 사는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운영하는 조그마한 공장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장 옆 공터는 아버지께서 철 기둥을 세워 손수 만들어 놓은 내 전용 그네가 있어 늘 혼자였던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하루 종일 그네에 매달려 허공을 왔다 갔다 하였고 아빠께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장안에서 시끄러운 선반을 돌리며 쇠를 깎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네에 내 몸을 의지한 채 놀고 있는데 옆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언니가 다가와 내 등을 밀어주곤 하였다. 그렇게 언니와 내가 하루하루 친해져가고 있을 때... 아버지께선 여느때와 달리 나를 언니에게 맡기고 손님을 만나러 가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손님을 만나러 가셨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 자전거 뒤에 매달려 담배 냄새가 자욱한 다방에 아빠 손님 만나러 동행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아빠와 나의 생활이 조금씩조금씩 변모해져가는 어느날... 공장 옆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에게 만들어 놓은 물건을 배달해주고 올 테이니 혼자 놀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께서는 리어카에 물건을 싣고 거래처에 가셨다. 혼자서 그네를 타고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내 뒤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먹다만 과자부스러기를 먹고 있었다. 유달리 동물들을 무서워하는 나는 움직이는 그네에서 내리려다 그만 돌부리에 이마를 다치고 말았다.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 울고 있는 나를 언니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 치료해 주었다. 아빠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언니! 하루는 언니가 싸온 김밥을 아빠께 갔다드리라며 내손에 쥐어 주었다. 아빠와 나는 서로의 입에다 넣어주며 처음 먹어본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이후로 언니는 매일같이 아빠와 나에게 맛있는 김밥을 싸다 주었다. 그렇게 우리 부녀와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친해졌다. 쉬는 일요일이면 아버지와 언니 그리고 나와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공원에 가서 같이 놀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 언니가 나를 업고 콧노래를 부르며 말을 건넸다. 말임아! 이 언니하고 같이 살지 않을래? 정말..? ... 응... 말임이하고 아빠하고 우리 세 명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데... 야~신난다!.. 언니야?.. 나 빨리 내려줘! 언니하고 같이 살자고 아빠에게 말하고 올게 아빠도 언니를 좋아 할거야. 그리고 나서 몇 개월 후 아버지와 언니는 결혼을 하였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모르고 자란 나는 언니와 쉽게 모녀사이가 될 수 있었다. 항상 웃음이 넘쳐나는 우리 집에 또 하나의 경사가 겹쳤다. 그렇게도 그리던 남동생 쌍둥이를 보았다. 늘 혼자였던 나는 두 명의 남동생이 갑자기 생기니 너무너무 좋았다. 학교 같다오면 나는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머니께서는 배다른 자식이라고 한번도 편견하지 않고 항상 내편에 서서 친어머니같이 때론 결혼하기 전 놀았던 언니같이 나에게 관심도 많았고 따뜻한 사랑도 쏟았다. 딸은 공부시켜 봐야 아무런 소용없다는 다른 집 어머니와는 달리 우리 어머니 만큼은 나를 당신의 뱃속에서 낳은 쌍둥이 아들들보다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해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대학에 다니며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혹시라도 용돈이 떨어질까 봐 내 책상 서랍 속에 몰래 용돈을 넣어주시던 어머니! 그렇게 모녀간의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어느날.... 어머니께 생신 선물 사드리기 위해 나는 학교 강의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나에게 환한 불빛이 스치면서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틀 만에 깨어난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어있었다. 내 옆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불어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를 다치게 한 아저씨께서 내가 누어있는 침대 옆에 서글픈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계셨다.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고 있을 때 아저씨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간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병원으로 급히 옮기려다 나를 다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하 단칸방에 다 찌그러진 1톤 트럭에 채소를 싣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아저씨! 거기에다 아내의 간암치료로 동전 한푼 없는 처지라 자동차 보험도 들지 못했다는 아저씨! 한번만 살려달라는 아저씨의 하소연을 듣고 부모님께서는 그분의 소원대로 아무런 조건없이 합의를 해주었다. 하루하루 사고 난 상처가 아물어 갈 때 아저씨께서는 돈이 다 떨어져 고통 받고 있는 아내를 집으로 다시 데리고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께서 병원비를 대신 내어주었다. 나중에 벌어서 갚으라는 말을 남긴 채... 하루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아주머니 병실에 찾아가니 뼈만 앙상히 남은 아주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고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며칠 뒤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저축해 놓은 돈과 살고 있던 집을 팔아 11개월 동안 병원비를 내고 치료했지만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지한 체 집으로 돌아오는 장애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께서 바늘 가는데 실가듯 내가 가는 곳엔 항상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만 했다. 시장에 갈 때나 미용실에 갈 때도 늘 휠체어에 태워 바깥세상을 볼수있도록 눈과 발 역할까지 해 주셨고... 당신의 생활을 잃은 채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주셨다.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지고 난후 어머니의 부축 없는 나는 대문 밖으로 한발 짝 나가지 못했다. 이제는 나보다도 몸이 더 불편해진 어머니의 대, 소변을 받아내며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집안에 갇혀버린 우리 두 모녀는 라디오와 컴퓨터로 하루하루 삶의 드라마를 엮어간다. 내 생에 단 한번 만이라도 휠체어 없이 걸을 수 있다면!!! 중풍으로 쓰러지는 그날까지 나를 돌봐주셨고 교통사고 이후 하반신 불구가 된 나를 17년 동안 내 손발이 되어주신 어머니께 휠체어에 태워 나에게 늘 해주셨던... 시장도 가고 미용실도 가고... 어머니께서 가고 싶어 했던 겨울 바닷가도 가보고 싶다. 내 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두발로 걸을 수 있다면!! 모든 여자들이 갈구하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는 것과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근사하지도 않은 조그마한 둥지라도 만들어 보고 싶다. 내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휠체어 없이 걸을 수 있다면! 내가 태어나 한번도 오른 적이 없는 산 정상을 두발로 걸어 올라가 내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모습을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여성시대에 내가 겪었던 지난 삶과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해야 할 것 같다. . . . 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