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할아버지.
허연 머리카락
듬성듬성 빗어 넘기고
굵게 주름진 이마에 인생을 담은 할아버지.
내가 가는 날이면 카운터에 앉아서 먼 길 이발하러 오셨냐고
반가이 맞아주시는 할아버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인사 하고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언제 들어오셨는지 욕탕 옆에 들어서신다.
가냘픈 몸매긴 해도 쭈글거림 없는 피부가 나이에 비해 매끄러우시다.
날 보고 하시는 말씀이 인생 별것 없소.
이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씀 속에 저무는 해의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혹한에 목욕탕 손님이 줄어든다는 말씀에 허무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서 한 말씀 드렸다.
춘삼월이면 옆 동네 꿀 뚝 없는 공장에 젊은이들이 득실 된다니 기다려 보세요
아마 그 인원들이 목욕의 피로를 풀 때가 이곳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마음을
거들어 드리니 할아버지의 입가에 빈 웃음이 돈다.
아마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다 부질없이 들리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만의 애쓴 흔적을 이곳저곳 다 말씀 하시는 그 모습에서 내 인생의
앞길을 가늠해 본다.
나도 팔순이 넘어서도 저렇게 정력적으로 일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할아버지 말씀이 눈감을 때까지 해야 해.
이걸 놓으면 누가 이걸 하겠어.
그냥 기관장만두고 내가 모든 걸 가족 데리고 한다는 할아버지.
날 보고 빙긋 웃으시는 할아버지의 인생 허허로운 웃음에서
나는 여운을 느낀다.
인생 그만 살고 싶고, 삶의 목숨 유지하는 지팡이를 아무데나 버릴 수 없어서
내가 살다간 흔적을 목욕물에 깨끗이 씻고 말려 보란 듯이 내려놓을 태세인
할아버지의 그 정신을 지나가는 여운처럼 나는 붙들고 서 있었다.
할아버지에 비하면 내 피부는 아직 젊고 윤기가 나질 않는가.
우리도 이제는 인생 십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발사 아저씨의 조크에 그려
남은 인생 발바닥 뜨겁도록 비비고 돌고 즐기며 삽시다.
이발사 아저씨 그게 최고여.
아등바등 살아봐야 별것 있어야지.
이렇게 일만하고 살아봐야 별것 없다는 이발사 아저씨의 입가에 쓴 웃음 도는
멘트에 나도 모르게 동감이란 입 박자를 맞춘다.
때밀이 아저씨의 주눅 든 마음에 희망을 주고, 내 손으로 씻고 나와도 될 것을
그의 힘에 나를 맡겨둔다.
그건 시장 경제의 돌고 도는 것을 유발시키기 위함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번만큼 다는 소비하면 아니 되지만 일정 부분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몸이 나른한 것이 목욕탕 뜨거운 물에 확 풀린다.
뜨거운 물을 받아서 깨끗한 물을 제공하겠다는
할아버지의 하얀 마음속에 나를 담그고, 내가 가진 마음을 이발사 아저씨와
때밀이 아저씨, 그리고 할아버지, 그 다음 나.
오늘은 넷의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차 안에 담고 왔다.
내 생각만 하고 아무 곳에나 흠집 걸치는 마음보다, 나를 나눠주는 마음이
우월하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오늘처럼 맑고 뜨거운 물에 나를 씻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내 인생 빛바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허연 머리카락 듬성등성 빗어 넘긴 할아버지의 인생 고뇌의 여린 웃음이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