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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心琴)

무정애환 2011. 2. 19. 13:01

 

 

심금(心琴)

 

 

 썩을 것이 다 썩고 남은 영혼의 뼈, 텅텅 빈 마음에서 저절

로 울리는 소리 ―.

 잠자리에 누워서 가야금 테잎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가야금을 뜯는 것은 그리움에다 인연이라는 마음의 줄을 이

어보는 일이다.

 영혼을 울리는 깨달음의 이 음절···.곱고 맑은 소리(音)는

가슴속에 절은 통한과 설움이 점차 투명해져 내는 휘파람일

게다. 연꽃의 뿌리가 진흙구덩이 속에 있듯 맑은 소리의 뿌리

는 절망과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닐까.

 가야금이 울린다.

 관현악에 비하면 단조롭고 화음이 없어 처량하지만, 자신의

발견이요, 깨달음이다.

 홀로 나서는 산책 ―.

 삶의 고비를 넘을 적마다 간절염을 앓던 뼈들이 일어나 일

생을 울린다.

 누가 줄을 놓아 영혼을 울리는가. 한 음절로서 만음(萬音)

을 듣고 그 소리를 한데 모아 두 음절을 울리는 가야금···.

 한 음절이 울리기까지 깊고도 예민한 귀로 얼마나 많은 소

리들을 귀담아 듣고 있었을까. 가야금 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

가 아니다. 한 줄, 한 줄이 만물의 마음과 이어져 만감(萬感)

이 우러나와 온 세상이 한마음이 되는 공감의 음(音)이다.

 존재와 존재, 시간과 공간, 찰나와 영겁에 이어진 인연이라

는 소리줄이 양끝에서 울려 그리움의 한가운데서 만나는 소리

여.

 산의 천년 명상의 귀에, 강물의 고적한 허리에 매여진 보이

지 않는 마음의 줄이 잠결에 와서 운다.

 가야금 소리는 인연을 끌어 당기는 소리일 뿐 아니라, 오히

려 풀어내는 소리다.

 침묵, 초월, 달관의 무게가 풀어져서 물이 되어 흘러가는

소리 ―.

 고통, 눈물, 절망이 풀어져서 구름이 되어 떠나는 광경 ―.

 열정, 안타까움, 아쉬움이 사무쳐서 말없이 손짓하는 이별

의 뒷모습이다.

 고요의 한 줄, 신비의 한 줄, 무심의 한 줄···.네 마음과 내

영혼에 줄을 잇고, 찰나와 영원에 줄을 달아 튕겨 본다. 깨달

음의 한 줄, 그리움의 한 줄···.달빛이 배이듯 화선지에 먹물

이 번지듯 울리는 영혼의 음절···.

 순리와 이치는 멀리 있지 않다.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 별들의 운행, 생명체는 죽음을 위해

늙어가고 빛깔은 새 빛깔을 낳기 위해 시들어 간다.

 머물지 않고 사라지는데 아름다움이 있다.

 외로운 날은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

 가야금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농현(濃眩)으로 떨린다.

 누가 영혼에 줄을 매어 내 영혼을 울리는가.

 달빛에 소리없이 꽃이 지고 있다. 잊을 수 없어 깨어 있는

줄을 울리는 손이여.

 그만 줄이 끊어져 눈을 감아도 좋을 가야금 소리 ―.

                                                   (글 : 정목일)

 

 

출처 : 아주아주 햇빛 좋은 날(현대문학수필작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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