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1926.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배우. 호는 수선(水仙).평양에서 출생,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 유학생으로 일본 우에노음악학교 성학과에서 수업 받았다. 1921년 동우회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극작가 김우진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23년 귀국하자마자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또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고,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가 대중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통음악을 가지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강사와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세미클래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하였다. 한때 극단 토월회에 주역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대형 오폐라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유지를 위하여 대중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고, 그녀가 꿈꾸었던 예술조국을 만들기에는 이 땅이 너무 낙후되어 견고한 유교적인 인습은 그녀를 더욱 못견디게 하였다. 특히,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다. 1926년 여동생 성진의 유학 배웅을 위하여 일본에 간 그녀는 닛토 레코드회사에서 24곡을 취입한 뒤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정사하였다. 그녀가 남긴〈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려지고 있다.
사의 찬미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적막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너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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