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구공원에서 폭탄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대외적으로는 '일본인 윤봉길'이었다. 체면을 잃은 일본군의 분노는 중국인을 향할 수도 없었다. 그 억울한 감정을 윤봉길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서 일본군은 증오의 대상인 윤봉길을 군의 손으로 처형하기 위해 그를 군법회의에 넘기는 데 집착했다." -야마구찌 다카시 '윤봉길 암장의 땅, 가나자와에서' 중에서 1932년 상해 홍구공원 의거 이후 일본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은 윤봉길은 그해 12월 19일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의거이후 윤봉길에 대한 보도는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과연 일본 아사히 신문의 보도는 진실인가? 윤의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가? 취재팀은 사형당시 일본군의 보고서와 그후 윤봉길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온 일본인들의 증언과 일본내 자료를 바탕으로 윤봉길의 사형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추적했다. 윤봉길 의사의 시신은 사형당한지 14년 후, 사형장에서 멀지 않은 육군 묘지 앞 길가에서 암매장된채 발견됩니다. 사형지가 아닌 육군 묘지 앞 길가에 암매장한 이유를 추측해보면, 그 시신마저 감시하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돌아가신 후에도 일제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 두 아들에게 남긴 친필 유서 강보(襁褓)에 싸인 두 병정(兵丁)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의 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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