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세월
작사 : 김호철
작곡 : 김호철
노래 : 박준, 노래공장
아 시린 세월에 참혹한 노동에
피눈물로 얼룩진 수많았던 날들이
오늘밤이 다 지도 가슴에 못 박혀
홀로 새는 이 밤도 꿈이어라 노동의 세월
기름밥에 사무친 기나긴 폭력의 세월
아픈 가슴 모아 일어서는 일천만 내 형제여
밤이 지나고 나면 새벽은 꼭 오리니
밝아 올 아침 위해 노래하라 노동의 세월
노동의 세월 - 박준
노동의 세월 - 노래공장
홍매화 같은 눈빛만 남기고
고 조문익 민주노동열사에게 바치는 추모영상
2006.2.9/제작 참소리, 편집 김효정
청학 문학 동인회 최완규님의 추모글
문익이형
어제와 같은 바람은 오늘도 부는데
만화책 같은 세상은 오늘도 그대론데
홍매화 같은 눈빛만 남기고 갈 길은 아직도 먼데 어디를 가십니까
바람도 안고가야 향이 난다고 작두날 같은 발길을 바삐 옮기더니 홍매화 같은 눈빛만 남기고 갈 길은 아직도 먼데 어디를 가십니까
못다이룬 꿈을 놓고 어찌 가슴치려고 남은 사람 슬픔보다 더 슬퍼할려고 홍매화 같은 눈빛만 남기고 어디를 가십니까
문익이형 제목없는 시도 제목은 있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제목으로 남아 문익 형 형에게 바칩니다
혁명도 필요없는 그 환한 하늘 나라로
조문익 동지 추모시 - 최종수
혁명도 필요없는
그 환한 하늘나라로 부디 잘 가시게나.....
아버지 없이
초등학교 졸업식장에 가야하는 큰아들
겨우 초등하교 일학년을 마친
막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남겨두고
그대, 어찌 눈을 감을수 있는가
이제 홀어머니가 된
엄마를 위로하기에는
고사리순같이 어린 두 아들
아버지 없이 살기에는
휑하니 커다란 폐교
창틀을 닦고 가훈을 달고
잡초를 뽑고 꽃을 가꾸던 동산
올 봄엔 누가 꽃씨를 뿌리라고 두 손 모두 관속에 가두었는가
그대가 애달던 모자세대가 되어버린
당장 단칸방 얻을 통장 하나 없이
아내와 두 아들을 두고 어디를 가는가
그리 빨리 가야만 하는가
고무신에 막걸리 잔을 돌리고
대자보에 또박도박 혈서를 쓰던
노동해방이네 민족해방이네 노선싸움으로 핏대를 세우던 동지들
제 밥그릇을 찾아
황금빛으로 피어난 무궁화
그 꽃잎 하나 가슴에 달고 떠난 자리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지키던
그 자리 비워두고
그대, 어찌 눈을 감을수 있는가
맹세를 잊은 벗들 그리도 안타까웠나
다른 길을 가느라 바쁜 동지들
그렇게도 보고 싶었나
비로소 죽음으로 죄다 끌어 모으고
우리들에게 왜 연대하라 외치지 않는가
앞산 뒷산에 진달래 피는 봄이면
새만금 갯벌에서 죽어갈 조개와 백합을 버려두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는가
그대, 어찌 핏빛 노을처럼 사라지려는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비정규직
무상의료 무상교육
인간다운 세상의 피를 빨아먹는 이윤과 자본의 흡혈귀를 향한
투쟁을 어디에 남겨두고 그리 서둘러 새벽길을 걸어가는가
하나뿐인 지구
수십억의 굶주린 민중들 벼랑으로 떠미는 악의 뿌리 WTO
송두리째 뽑아낼 혁명의 무기를 어디에 챙겨두고 어찌 그리 바삐
가는가
그대의 산맥같이 우렁찬 구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제 영영 다시 들을수 없는가
그대의 활화산같이 뜨거운 노래는 또 어디에서 메아리치겠는가
그대가 몸으로 보여 준 불굴의 삶은
또 어디에서 푸른 희망으로 피어나겠는가
운동은 말도 아니요
주장도 논문도 아니요
운동은 단지 그 자체 삶이라는 것을
눈보라 밤길을 홀로 헤쳐
뚜벅뚜벅 말없이 걸어가는 길임을
마침내 죽음으로 껴안아 절규하는
우리 모두의 벗이여 동지여 잘 가게나
그대가 맨몸 맨 정신으로 보여준
투쟁의 올곧은 길을 따라
우리 튼튼한 어깨동무로 나아가
그대의 굳건한 희망으로 살리니
우리 목숨 다하는날
그대가 꿈꾸던 해방의 미소를 안고
우리 다시 하나로 만나세
벗이여 동지여
우리 가슴에서 다시 뜨겁게 부활하게나
갯벌을 막는 개발도 없고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차별도 없는
허리에 꽂힌 삼팔선 철책도 없고
기름진 백인도 허기진 사람도 없는
파란 하늘을 난도질하는 스텔스 미군폭격기도 없는
그대가 그렇게 꿈꾸던
혁명도 필요없는 그 환한 하늘나라로 잘 가게나
동백 꽃송이처럼 여린 두 아들이
벌써 그리울 다정했던 벗이여
녹차향처럼 따스하고 고운 아내가
벌써 그리울 우리 모두의 동지여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끝없는 싸움을
자신의 온몸으로 삶으로만 보여주길 바랐던
우리의 꽃다운 벗이여 동지여 부디 잘 가시게나
그 환한 하늘나라로 부디부디 잘 가시게나.......
思 故 조문익!
당신이 꿈꾸던 세상으로
이용구/전북인터넷 신문 참소리
思 故 조문익 !
우리 만난지도 정말 오래 되지 않았습니까?
누나가 졸업을 하는 날이 처음이었으니, 아마도 87년도 2월인가
싶습니다. 누나는 몇몇의 남자들 틈에 끼워, 그저 친한 써클
친구로만 소개를 했었지요.
나중에 왜 인사를 시켰겠냐고 했을 때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만큼
눈치없는 저에게 조용히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변치 않는
모습으로 우릴 대하셨고, 차갑고 답답하기만 할 것 같은 그 마지막
자리에 누워 계실때도 당신은 처음 보여준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만나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용기와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은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이번 설에는 반드시 쇠주 한잔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건만, 결국 내 욕심으로 당신을 그냥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천추의 한(?)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靑天霹靂이었읍니다.
새벽녘에는 결코 울릴 리 없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을 때 저도 그만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
그 말로만 듣던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 이런 건가요...
커다란 망치로 얻어맞은 멍한 기분으로 잠시 있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꽃 속에 묻혀있는 당신을 보고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반갑고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훌훌 털고
일어설 것 같아 바닥에 뚝뚝 흘리는 굵은 눈물에도 애써
외면하였습니다. 둘째, 세째날의 여파로, 나흘째 되는 날 !
저도 지독한 놈때문에 결국 병원신세를 지고 말았읍니다.
전주서 살다, 정읍으로 들어 갈 때도... 또 장수로 간다고 할 때도...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생각이 많은 당신은 조용한 곳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동안 저는 당신에게서 일부러 멀리하려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이 희미하게 보여도
일부러 당신의 꿈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루고자하는 철학이 흐릿하게 보여도 애써 당신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가 감히
당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시건방진 일이라고 여겼고,
당신과 맞장(?)을 뜨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기만 한 제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마도 당신에게 同志보다는 단순한 家族관계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그 큰 뜻을 언젠가는 '이해'하는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그 '이해'를 놓고 예기 할
사람이 사라졌으니 이를 어찌 할까요...그래서 더 나는
서러웠습니다. 목 놓아 울고 싶었습니다.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그러면 어쩔 건가요... 다시 살아 돌아 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와 당신의 정성이 있는 글 하나하나를 찾아 곱씹어 봅니다.
한동안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던 ‘이수호위원장에게 보내는
서신’도 읽었고, 전주교도소에 속박되어 있을 때의 글도 읽었습니다.
당신 잘못은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였는데, 꼬치꼬치 묻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던 저는 아마도 바보였던가 봅니다.
당신이 한동안 ‘반폭력’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 때 저는 미련하게도
조그마한 내 삶 하나도 주체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먹을거리(?)로
아웅다웅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동네
이주여성이야기’ 연재를 보고서, 장례식장으로 찾아오고,
논실마을학교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 난 사람...
’이라고 울면서 노래를 부르던 이주여성들을 이해하였습니다.
당신이 써 내려간 글월 하나 하나에서 그 동안 고스란히 녹아있는
당신의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강
건너 불구경하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자꾸만 생기는데, 이를 언제 어디서
답해 주실 건가요...
그래도 妹兄!
비록 제가 당신을 모두 이해는 못했어도, 당신을 뒤따르며 애도하던
많은 사람들 못지않게 살아생전 든든한(?) 당신의 후원자였음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을 자듯 조용히 누워있던 당신의
마지막 얼굴을 생각만 해도 콧등이 시큰해 집니다. 운전을 하다가
어이없게도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젠,
당신이 꿈꾸던 세상으로, 무겁고 두터운 짐을 벗어 버리고 편히
가십시오. 항상 잠이 모자라 힘들어하셨지요...
그 곳에서 편안히 깊은 잠을 주무세요.
2006. 02. 15. 새벽 3시
깊은 밤 당신을 생각하며...
妻男 李容求 드립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 - 조문익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 동지의 눈물
투쟁에 비로소 나선 우리 동지들이
힘들어하며
혹은 분노하며
혹은 갈길을 몰라하며
눈물짓는다면
경찰이 방패로 찍는 것보다
먹고살 방법이 막막해져 바라볼 곳이 없거나
그런 것들보다
나는 여리고 여린 개정병원 김은혜지부장의
눈물이 오히려 두렵다.
군산법원 앞
800일이 넘는 병원정상화투쟁기간동안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였는가
그 눈물은 나의 두려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진실을 숨기는 것
거짓을 말하는 것
혁명에 대하여
혹은 세상의 뒤집힘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는 것
폭언 속에서도
관리들을 내지르는 주먹에서도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부정하고 또 불의한 세상을 뒤집는
혁명을 잊는 것
나는 그러지 않으려 이땅에 때어났다
.
생동하기 위하여
- 2001년 6월 15일 새벽 2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