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華火-夏木綾子 作詞 岸本健介 作曲 前田俊明
一 ごめんなさいと 駆けだす露地に 降るは涙の 罪しぐれ ついて行きたい 行かれない 人の妻です…許して下さい 恋は 恋は 恋は儚い 夢華火
二 こころだけでも あなたの妻と そっと自分に 言いきかす 紙のこよりの 指輪でも そうよ何より… 契りの証 恋は 恋は 恋は悲しい 夢華火
三 みんなこの世は うたかたなのと 全て忘れて 腕の中 夢の破片を 集めても 人の妻です… 添えないさだめ 恋は 恋は 恋は一夜の 夢華火
自然と芸術が一緒に呼吸する日光 日光(にっこう)는 아름다운 自然과 多樣한 볼거리로 東京 近郊에서 가장 人氣가 높은 觀光 名所로 알려져 있습니다. 特히 二荒山神社(ふたらさんじんじゃ)와 徳川 幕府의 初代 将軍 徳川家康를 모신 東照宮(とうしょうぐう) 輪王寺(りんのうじ)等의 建築物과 그를 둘러싼 日光山内(にっこうやまうち)는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으로 指定되어 있습니다. 日光山内의 寺院과 神社를 흔히 二社一寺(にしゃいちじ)라고 하는데 이렇게 神社 둘 寺刹 하나로 明確하게 分離된 것은 明治時代의 神佛分離政策 以後로 近世 以前에는 寺刹과 神社를 모두 合쳐 불렀기 때문에 지금도 어디에 屬해 있는지 確實하지 않은 建物이나 搭들이 많습니다.
日光山內에는 總 103棟의 建築物이 重要文化財로 指定되어 있으며 大部分 17世紀의 日本 建築樣式을 代表하는 作品으로 높은 藝術性을 지니고 있습니다.
輪王寺
日光山内(にっこうさんなんない)의 入口에 자리한 輪王寺(りんのうじ)는 奈良時代의 高僧 勝道(しょうどう)大師가 세운寺刹로 日本 天台宗의 總 本山입니다.
數많은 高僧들이 거쳐간 輪王寺는 3代 将軍 徳川家光(とくがわいえみつ)의 "墓인 大猷院(たいゆういん)이 造成된 以來 徳川幕府의 支援을 받아 繁盛했습니다.
붉은 칠이 印象的인 本堂 三仏堂(さんぶつどう)에는 이름 그대로 千手觀音,阿彌陀如來,馬頭觀世音의 세 佛像이 安置되어 있으며 本堂 뒤에는 國家의 安危를 祈願하며 세운 靑桐 塔이 있는데 內部에는 佛經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外에 勝道大師를 모시고 있는 開山堂(かいさんどう) 輪王寺의 寶物을 展示하고 있는 宝物殿(ほうもつでん) 京都의 景致를 模倣해 만든 庭園인 逍遙院(しょうよういん) 等이 볼만합니다. 그러나 輪王寺의 가장 큰 볼거리는 바로 家光의 墓인 大猷院. 規模는 東照宮 보다 작지만,伽藍의 配置나 細部 裝飾은 東照宮를 뛰어 넘어 藝術的으로 보다 높은 評價를 받고 있습니다.
正門부터 이어지는 階段을 따라 6個의 門이 나타나는데,그 中에서도 夜叉門(やしやもん) 唐門(からもん) 等이 有名합니다. 唐門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家康의 墓가 있는 本殿(ほんでん)이 나오는데,彫刻, 漆, 彩色, 裝飾金具 等 當時 最高의 技法이 使用된 華麗한 모습에 절로 感歎이 나옵니다
東照宮
輪王寺를 지나 參拜路 안쪽으로 들어가면 日光 觀光의 核心 포인트인 東照宮(とうしょうぐう)가 나타납니다
처음 지어질 때는 儉素한 雰圍氣였다고 하는데,家康의 孫子인 家光가 約 56万 兩의 金을 使用해 華麗하게 改造했습니다. 彫刻과 彩色 等에서 當時 最高 水準의 技術이 使用되었기 때문에 建築史的으로도 意義가 깊은 곳으로 石の間(いしのま) 陽明門(ようめいもん) 等 8棟이 國寶로 34棟이 重要文化財로 指定되어 있습니다.
넓은 參拜路를 지나면 巨大한 鳥居(とりい)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日本에서 가장 큰 石造 鳥居로 높이가 9.2미터,幅은 13.2미터에 이릅니다. 總 15個의 花崗岩으로 만들어졌는데 重量配分을 考慮해 製作된 기둥과 地震을 對備해 連結하는 나무 部品의 속을 비우는 等 科學的인 構造로 製作되었다고 합니다.
境內로 들어서면 東照宮를 代表하는 建築物인 陽明門이 나타납니다. 陽明門은 1636年에 세워진 것으로 東照宮의 建築物 中에서도 가장 華櫚한 建物입니다. 높이 1미터로 規模 面으로는 그리 크지 않으나 金屬 工藝 옷칠 等 當時 一流 匠人들의 솜씨를 집합시켜 놓은 建築物로 動物,植物,人間 等 앞 뒤에 새겨져 있는 彫刻의 數만 500余 個에 이른다고 합니다.
東照宮에는 徳川 家門이 휘청 할 程度의 財貨가 들었다고 하는데,多樣한 彫刻과 색깔로 裝飾된 門을 보면 그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陽明門 왼쪽에 자리한 本地堂(ほんじどう)는 東照宮에서 가장 큰 建物로 천장에 그려진 龍의 그림 때문에 더욱 有名합니다 鳴龍(なきりゅう)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그림 아래서 拍手를 치면 房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好奇心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直接 試驗해 보시지요
陽明門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東照宮의 中心 建物인 本社(ほんしゃ)로 들어가는 唐門(からもん)이 나타납니다. 中國風으로 華麗하게 꾸며진 唐門의 지붕과 기둥에는 多樣한 彫刻들이 새겨져 있어 當時의 뛰어난 技術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家康의 墓所인 奥宮(おくみや)에 가기 爲해 서는 總 207段의 階段을 올라가야 하는데,階段은 모두 各各 한 장의 돌로 되어 있어 石工들의 뛰어난 솜씨를 느낄 수 있습니다. 奥宮의 안쪽에는 徳川家康의 遺骨을 保管한 靑銅塔이 있는데 一般人에게는 公開되지 않습니다.
東照宮를 紹介할 때는 多樣한 彫刻을 빼놓을 수 없는데,그 中에서도 가장 有名한 것이 神馬를 매어두는 마구간인 神厩舎(しんきゅうしゃ)에 있는 원숭이 彫刻입니다 特히 各各 눈과 입과 귀를 가리고 있는 세 원숭이(三猿=さんさる))가 有名한데. 나쁜 것은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意味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外에도 家康의 墓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坂下門(さかしたもん)에 새겨져 있는 잠자는 眠り猫(ねむりねこ) 彫刻‘想像 속의 코끼리,12支 動物,龍, 기린, 獅子,鳳凰 等 多樣한 영수,영조의 彫刻들을 찾아보는 것도 東照宮의 즐거움 中 하나 입니다.
그리고 家康의 遺物이 들어있는 靑銅塔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二荒山神社
二荒山神社(ふたらさんじんじゃ)는 日光 山岳信仰의 中心인 男体山(なんたいさん)의 神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예전에는 日光에서 가장 큰 規模의 神社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東照宮 옆에 位置한 本社(ほんしゃ)를 비롯해 日光山內로 들어오는 入口의 新橋(しんきょう) 二荒山神社의 別館인 本宮神社(ほんぐうじんじゃ) 東照宮 東쪽 끝에 位置한 北野神社(きたのじんじゃ) 滝尾神社(たきのじんじゃ) 等의 여 러 神社가 包含되어 있고 新橋 等 23棟의 建築物이 重要文化財로 指定되어 있습니다.
新橋는 室町時代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리로 두 個의 돌 기둥과 붉은 色으로 칠해진 欄干이 印象的입니다. 現在의 다라는 洪水로 流失된 것을 1904年에 原型그대로 再建한 것이라고 합니다.
二荒山神社에는 由緖깊은 建物들이 많은데 男体山(なんたいさん) 頂上에 있는 本宮(ほんぐう)는 지붕과 塗色 等을 除外하고 創建 當時의 建築樣式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拝殿(はいでん) 역시 當時의 모습을 維持하고 있습니다.
또한 神與舎(しんよしゃ)는 1617年 東照宮의 附屬 建物을 移轉한 것으로 現在 東照宮의 建物 中 原型 그대로 남아 있는 唯一한 建物입니다. 지금은 徳川家康와 豊臣秀吉의 神位를 모시는 가마를 保管하는 建物로 使用되고 있습니다.
그 外에 帝國 神話에 登場하는 神을 모시는 大国殿(だいこくでん)과 所願을 들어준다는 夫婦 衫나무 마시면 健康해 진다는 샘물인 二荒霊泉(ふたられいせん)이 有名한데 二荒霊泉은 特히 眼科 疾患에 效果가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