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에서 / 受天 김용오
(낭송_ 고은하)
어스름한 가을 저녁이다
오리 알을 깨고 나온 사바인 범종이 경내를
서성이며 누군가를 찾는다.
찾기가 무섭게 단풍잎인 조라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허기들이 졌는지 날라리에 곡차를 쑤셔 넣으니 몇은
구렁이가 되어 긴 몸을 뒹굴며 혀를 널음이고 몇은
도깨비가 되어 이마에 불을 켜고선 노송이며 가문비
나무에 머리를 처박고 제풀에 쓰러지니 숲에는 모를
안개가 모락모락 피고 있었고 언젠가 푸른 물살을
가르고 떠난 목어가 있던 그 자리엔 목탁이 울고 있다.
마치 골골하여 북망이 멀지 않은 우리 아버지가
천식약을 밥이듯 잡수시며 우는 것처럼,
팽나무에 달디 달게 익은 초승달 하나를 뚝, 따
나누어 던져주며 풍경이듯 물었다 저 산 너머
허리는 굽고 이빨은 빠져 싸리문밖에서 무덤이듯
앉아 날 기다리는 노부가 있듯 너희도 나처럼
그러한 이가 있더냐.
내일은 또,
어느 난전, 난전으로 가서 꽹과리를 두드리며
파리약을 팔까나
그림자 하나 꺼질 듯 긴 숨을 내뱉고서 산을 내려가니
조용하기만 했던 숲이 해괴한 울음 소리로 가득찬다
저만치 암자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가사 한 벌이
화급히 뛰어오며 아스라이 사라져간 그림자를 향해
돌아와 달라며 부르고 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시주.
★ 일러스트 : 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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