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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도 그외 ....대금연주

무정애환 2013. 1. 14. 04:31


 

사군자_竹.jpg

 

 

“마른 사람은 살찌울 수 있지만 속된 선비는 고칠 수 없다."

 

 

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가사식무육 불가거무죽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무육령인수 무죽영인속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인수상가비 사속불가의

 
고기를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어도 대나무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 
고기를 못 먹으면 여위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스러워진다. 
사람이 여윈 것은 살찌게 할 수 있지만 선비가 속스러운 것은 고칠 수가 없다.

 

중국 北宋의 관리,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였던 

소동파는 묵죽송(墨竹頌)에서 위와 같이 대를 칭송하였다.

 

 

시군자_竹1.jpg

 

 

사군자_李霆_風竹圖.jpg

 

 

대란 것은 맑고 굴하지 않고 곧으며 변하지 않는다.
속이 텅 비어 있어도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곧아서 비스듬하지 않으므로
엣날 현인과 군자는 이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高裕燮,『朝鮮畵論集成』安珦조 참고 
" 夫竹之爲物 淸而無累 貞而不變 虛而有容 直而不倚 古之賢人君子無不愛之"


안향은...군자란 마음을 바르게 가지기를 힘쓰며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대하는 사물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대부는 대를 본받아 자기의 행동을 비유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대는 부러질망정 굽힐 줄 모르고 눈이 온다고 해서 색갈을 바꾸지 않으며
속이 비어 있지만 공허하지 않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 있는 식물이기 때문에
군자가 이를 통해서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다 그 뜻이 있다고 하였다.


『대나무를 그리는 것은 초서를 쓰는 것과 같으니 ,
속될 것을 염려하지 청초한 것을 염려하지 않네.
매화를 그리는 것은 말을 보는 것과 같으니,
뼈대로 하는 것이지 생김새로 하는 것이 아니네 .』

 

'예전 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누구나 잘하는 것은 홀로 조예가 깊은 것만 못하다.'

하였고.또 이르기를...
'여러사람이 비난하는 것은 홀로 알아주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홀로 조예가 깊은 것은 자기자신에게서 구할 수 있지만 
홀로 알아주는 것은 그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대나무를 그리는 것은 또한 그러하니,
시류를 좆지 않고 명예에 상관하지 않은 채 
대나무 숲이나 대나무 가지 하나라도 마음 속에서 내어 
맑은 바람이 숲에 가득할 때, 
오직 백련작이 날아와 마주 대하는 것만 허락할  뿐이다.
(冬心畵竹題記)
-金農(1867-1673 양주 화파 팔괴- 시류를 좆지 않는 독창정신으로 그림을 그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나무가 마음이 비고 높은 절개가 있어
얼굴이 마치 붉은 듯한 것을 흠모하게...
화가 금농의 붉은 빛 대나무 그림은 마음이 비고 절개가 높은
군자의 미덕에 붉은 빛이 감도는 젊은 모습을 더욱 증가 시키기 위한 것으로
허심고절한 군자의 미덕을 더욱 더욱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사군자_竹300.jpg

 

 

죽(竹)은 난, 매, 국과 같이 사군자로 불리워 왔으며,
사시로 청청불변(靑靑不變)하는 상록수로서 그 탈속(脫俗)의 취향을 
특히 문인들이 좋아하여 사군자 중의 군자로서 귀함을 받아왔다 .
사시로 푸르고 또 곧고 강인한 줄기는 
옛부터 충신 열사(忠臣烈士)와 열녀(烈女)의 절개에 비유하여 왔다.
예부터 (文人墨客)들은 대나무가 가진 이같은 品性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겨왔다.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집(四佳集)에도 대나무는 굽지않고 
그 줄기가 유독 발라서 가히 천지간에 맑기가 으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竹은 언제쯤부터 그려져 왔으며 그 기법은 어떠한가 살펴보자.

 

화죽(畵竹)은 역시 원체화풍(院體畵風)인 균륵법(鈞勒法)과
재야파풍(在野派風)인 묵죽법(墨竹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균륵법의 죽은 농채사실풍(濃彩寫實風)이요,
묵죽법의 죽은 몰골수묵(沒骨水墨)의 사의풍(寫意風)으로
鈞勒竹은 당(唐)의 왕유(王維)가,
묵죽(墨竹)은 당의 현종황제(玄宗皇帝)가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唐代엔 이미 묵죽이 상당히 성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묵죽법을 확립한 것은 宋代의 문여가(文與可)라고 말해진다.


문여가는 各體의 書와 山水에 능하였으며

특히 묵죽을 잘하여 "고금제일(古今第一)"이란 격찬을 받았으며 
역대 문인화가들의 죽법(竹法)의 표본이 되었다.
문여가 동시대인인 소동파(小東坡) 역시 묵죽을 잘하였는데 
주죽법(朱竹法)으로도 유명하다.


朱竹이란 묵대신 붉은 색(朱色)을 사용한 것인데,

그 유래인즉
소동파가 당시화원에서 흥이 돋아나 竹을 그리게 되었는데
마침 묵필을 얻을 수 없어
옆에 있던 붉은 색으로 죽을 그리었다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세상에 붉은 죽도 있는가?』고 묻자 
동파는 반문해서 
『그러면 자네는 세상에 墨色의 竹이 있다고 들었는가?』했다 한다.

 

당대(唐代)에 시작되어 송대(宋代)에 크게 유행하고 원(元)에까지 계승된 묵죽은
특히 원대에 와서 많은 뛰어난 대표적 명가들이 나왔다.
이는 당시 남의 민족의 지배(外族治下)인 원元에 살고 있던 
유목(流牧), 실향(失鄕)의 문인묵객들이 스스로를 달래든 한 소재로서 
청고경직(靑高勁直)한 품성의 죽을 많이 택했는데

이때 나온 뛰어난 화가로는

오중규(吳仲圭),고극공(高克恭),이중빈(李仲賓) 등이 있다.


오중규(吳仲圭-梅花道人)는
원말(元末)의 사대가(四大家)의 한사람으로 竹을 50년 그렸다고 한다.


淸의 정판교(鄭板橋)도 50여년간 난죽(蘭竹)만을 그렸다고 한다.
평생을 두고 대나무를 그린 셈이 된다.

 

특히 元의 대가들은 墨竹을 좋아해서 그 영향이 우리나라에도 미쳐 
이조초기(李朝初期)엔 이정(李霆), 유덕장(柳德章)같은 이름난 화가가 나왔다.


이정(李霆)은 世宗의 玄孫(현손)으로 묵죽을 잘그려 동방의 제 1명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엔 옛부터 竹을 잘하는 것을 제일로 치는 관습이 있었으니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도
「試竹, 山水人物花草中 二才, 竹爲一等, 山水二等, 人物翎毛三等, 花草四等,

如花草通則給二分,略則一分, 人物翎毛 以上等而上之 略加其分」
「시죽, 산수인물화초중 이재 죽위 일등, 산수이등, 인물영모삼등, 화초사등,

여화초통칙급이분,약칙일분,인물영모 이상등이상지 약가기분」
즉 죽의 작화를 산수,인물, 화초 위에다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의 뇌운묵죽화(雷雲墨竹畵)에도
「吾東專工墨竹 畵科品在山水上」
 (우리나라에서는 묵죽을 전공하면 화과의 품등이 산수 위에 있게 되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 

經國大典에 있는 말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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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죽도

 

<묵죽도>

竹은 일기와 생태에 따라 구분이 되니

청죽(晴竹)과 앙죽(仰竹), 노죽(露竹)과 수죽(垂竹), 우죽(雨竹-垂竹),

풍죽(風竹), 미풍죽(微風竹), 월죽(月竹), 월야죽(月夜竹),

풍월죽(風月竹) 등으로 불리우는 이름이 그것이다.
일기와 생태에 따라 그 작화법도 달라지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묵죽에는 疎竹, 松죽, 절지죽 등이 있으며,

돌과 어울리게 하여 그려 넣은 죽석도,

고목도 속에 같이 넣어 그린 고목죽석도도 있다.

 

蘭의 선線이 전부 곡선(曲線)인데 반해서 
竹의 線은 거의가 直線(직선)으로 그리는 것이 특색이다.
때에 따라 작은가지(小枝)나 風竹, 또는

줄기와 잎까지도 曲線으로 표현할 때가 있으나 그러한 경우에도

蘭과는 달리 竹 특유의 독특, 강직한 線으로 표현이 되어야함은 물론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직선을 그리는 것은 곡선을 그리기 보다 쉽다고 생각 되나 
사실은 그 반대로 직선을 바르게 그린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竹을 그리는 방법은 먼저 잎에서 시작하여 점차로 작은 가지(小枝),줄기 
그리고 마디(節)의 순서로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폭의 죽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줄기에서 시작하여

다음에 작은가지,다음에 잎을, 최후에 마다(節)을 그리는 것이 순서이다.


 





김홍도. 묵죽도. 지본수묵, 23 x 27.4cm,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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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주           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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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묵채색-장대천(1976)竹菊.jpg

 

 

  

 

 

    대 금 1
    시 금난새
    천년을 거슬러 한의 소리를 자아내고 
    애절한 그리움을 소리로 달래려 하네 
    끊어질 듯 이어지고 느린 듯 어느새 빨라지고 
    외로운 감정을 자진모리로 휘몰아치네 
    자연이 숨 쉬는 소리인가
    이별의 슬픔이 내는 소리인가 
    너의 애절한 소리에 
    나의 심장은 멎어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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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幽人日記[유인일기] - 대금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