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바다♣ "아버지, 이제 바다가 보이시죠." 새벽4시, 눈을 뜨자마자 아들은 옆자리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숨을 멈춘 듯 평온한 모습. 아버지 코앞에서 숨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아들은 자리를 일어선다.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지 어느덧 십년째. 1994년 어느 날도 아버지는 새벽에 바닷일을 나갔다. 그러나 고깃배에 오르기도 전에 쓰러졌다. 오른편 전신 마비. 아버지는 그 뒤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 겨우 방바닥을 기어다닌다. 대소변을 가리기는 커녕 말도 못한다. 멀뚱히 그저 허공만 바라볼 뿐이다. 두유 한병을 아버지 머리맡에 갖다 놓고 방문을 연다. 바닷일을 마치면 얼추 오전 8시 30분쯤. 두유로 허기를 때운 아버지는 그때까지 아들을, 아니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고기는 안 잡혔다. 열마리 남짓이 전부다. 지난 한달 수입은 겨우 12만원. 지난해 수해 뒤로 월 30만원도 채 벌지 못했다. 아직도 해안선엔 장난감,냄비 같은 세간살이가 떠밀려 온다. 인근해 어장엔 이제 희망이 없다. 방문을 열었더니 똥냄새가 진동을 한다. 체육복 바지에 똥을 싼 채로 아버지는 TV만 보고 있다. 아버지는 보통 일주일에 두번 큰일을 본다. 하지만 요즘엔 부쩍 횟수가 늘었다. 벌컥 화가 났다. "어제도 질러놓더니 오늘도 그러면 어떡하노! '추리닝' 이 두벌인데 뭐 입고 있을라고!" 아들에 눈길 한번 주곤 아버지는 다시 TV를 바라봤다. 대꾸라도 하면 그나마 나을까. 어느 어촌처럼 갈남리도 도박과 술로 흥청대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 동네에서도 내놓은 '난봉꾼'이었다. 평생을 해녀로 일하며 3남2녀를 키워온 어머니는 예순도 안된 92년 갑자기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쓰러지자 동네 사람들은 "벌 받았다"고 수군댔다. 마침 당시에 대학을 졸업한 막내가 당분간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다. 나머지 네 남매는 외지 생활이 너무 빠듯했다. 막내도 자신의 삶을 찾아야 했다.장남으로써 더이상 면목이 없었다. 그의 설득에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복 바지를 빨고 왔더니 아버지는 그새 아침밥을 다 먹었다. 감각이 없어 주면 주는대로 다 먹는다. 자신의 체육복 바지를 아버지에게 갈아입혔다. "뭘 잘했다고 밥을 다 먹노! 또 싸지를라고 그라나! 이제 엄마 곁으로 가 버리소!" 아침 8시 30분. 점심 12시 30분. 저녁 6시 30분. 그는 한번도 식사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그물을 손보다가도 끼니 때만 되면 일어섰다. 공공근로라도 나가면 벌이가 좀 나을 텐데 하루종일 집을 비울 수 없어 매번 포기했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배멀미가 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향을 떠났다. 도장(塗裝)기술을 배워 도시의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다. 갯마을의 담벼락은 높고 두껍다. 커다란 바윗돌을 하나씩 쌓아올린 모양새도 무척 견고하다. 방파제 겸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집 담장은 독특하다. 집안을 둘러싼 10m길이의 담은 양 끝만 높다란 돌담일 뿐, 가운데 7m는 무릎 높이의 낮은 벽돌담이 자리잡고 있다. 작년 늦가을께. 아버지가 마루까지 나와 있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체를 애써 바로 세우려고 했다. 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아봤다. 아들은 그때 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아들은 보았다. 일어서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높이에선 돌담만 보일 뿐이었다. 그때까지 아들은 정말 몰랐다. 돌담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지. 당신은 돌담 너머 바다를 보고 싶었던 거다. 다음 날 그는 돌담을 허물기 시작했다. 높이1m30cm 두께60cm의 돌담을 그는 묵묵히 부숴 나갔다. 수많은 바윗돌을 혼자 들어내고 내다 버렸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높다란 돌담이 있던 자리엔 낮은 벽돌담이 대신 들어섰다. 오늘도 아버지는 마루로 나와 있다. 돌담을 허문 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번씩 마루로 기어서 나온다. 아버지 곁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쪽빛 바다. 아버지를 돌아봤다. 당신의 눈동자에도 바다가 들어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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