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淚の酒-三門忠司////酒の話し(D)

무정애환 2011. 10. 28. 10:43



淚の酒-三門忠司


淚の酒-三門忠司

作詞 中山邦雄 作曲 小池靑磁


男一途の火の恋を
なんで涙で 消されよう
未練ばかりが ただ募る
夜の暗さを 梯子酒


浴びて溺れて なお酔えぬ
酒の苦さは 噛み締める
露地の屋台の霧さえも
男心が 泣げる夜


涙ぐんでた あの顔に
なんで嘘などあるんだ
噂なんだぜ 噂だと
胸に聞かせる 梯子酒


酒の話し

日本의 술의 起源

日本 最初의 술인 穀酒의 起源에 對해서는 여러 異見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7世紀 天智天皇時代에 어떤 사람이 대나무를 많이 가꾸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나무를 벤 그루터기에서 異常한 香氣가 나기에 仔細히 살펴보니 새들이 쌀을 물어다 가 그곳에 넣어둔 것이 醱酵되어 술이 되어 있었다는 說도 있고 8世紀의 播磨風土記(はりまふうどき)에는 “어느 神社에서 神에게 바친 供養이 쉬어서 곰팡이가 生겼기에 그것으로 술을 빚었다.”라는 記錄도 있습니다.

술에 얽힌 가장 有名한 傳說로는 新羅 神이자 日本의 開國神인 スサノオノミコト(首佐之男命)에 얽힌 傳說을 들 수 있습니다. 天上에서 말썽을 일으켜 地上으로 쫓겨난 スサノオノミコト가 머리가 여덟 개 달린 怪物 뱀을 만났는데, 이것을 물리치기 爲해 여덟 개의 항아리에 술을 담아 두고 怪物 뱀 이 各各의 항아리에 여덞 개의 머리를 처박고 술을 먹게 하여 모두 취하게 한 다음 삽으로 찍어 죽였다는 傳說입니다.

이때 スサノオノミコト가 빚었던 술에 對하여 많은 學者들의 意見이 紛紛합니다, 어떤 이는 이 술을 果實酒의 起源으로 보고 또 어떤 이는 가장 原始的인 穀酒의 形態인 ‘口噛み酒’ 의 起源으로 보기도 합니다. 口噛み酒에 對한 內容은 다음에 言及됩니다.

어쨌든 スサノオノミコト가 新羅로부터 술을 만드는 技術과 材料를 가져다 日本에 傳했다는 文獻의 記錄들은 우리나라가 日本의 술 文化에 적지 않은 影響을 끼쳤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貴重한 資料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歷史的인 記錄을 根據로 할 때, 日本이 本格的으로 술을 酒造하게 된 데에는 뭐니 뭐니 해도 百濟의 影響을 排除할 수 없을 듯합니다. 8世紀에 完成된 現存하는 日本最古의 歷史書 『古事記』에는 다음과 같은 記錄이 실려 있습니다

応神天皇(おうじんてんのう) 時代에 百濟의 釀造 技術者인 須須許里(すすきょり)라는 사람이 日本으로 와서 좋은 술을 製造해서 獻上했습니다. 天皇은 이 술에 醉해 氣分이 매우 좋아서 “須須許里가 빚은 香氣로운 술에 이 몸이 醉했도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술. 美酒에 나 醉했도다" 라고 옳으셨다. 여기서 말하는 술은 누룩으로 빚은 술, 具體的으로 말하자면 濁酒였을 것으로 推定됩니다.


古代의 釀造場

須須許里(すすきょり)가 日本에 술 文化를 傳한 痕迹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日本에는‘佐賀’나‘佐香’‘佐牙’ 等으로 쓰고 ‘さが’라고 읽는 이름의 神社가 많은데, 술을 못하는 日本語 ‘酒(さけ)’의 發音이 우리나라의‘삭다’‘삭아’‘삭으니’에서 비롯되었다는 說에서 볼 때 ‘さが’라는 이름의 神社들 亦是 古代에 百濟로부터 傳해진 日本 술의 歷史와 關聯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中 京都에 있는 佐牙神社에 保管되어 있는 記錄書 에는 須須許里가 술을 만들어 天皇에게 바쳤다는 內容과 須須許里가 酒神으로 모셔 졌다는 內容이 分明하게 記錄되어 있습니다.

또, ‘天皇이 언덕배기에 술을 만드는 建物을 세우고 酒神을 모시게 했다’는 記錄도 나와 있는데, 實際로 佐牙神社에서 北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記錄에서처럼 古代에 술을 빚던 建物의 痕迹을 發見할 수 있습니다.

古代釀造場의 痕迹인 셈 입니다. 이처럼 須須許里는 日本의 酒神으로 모셔질 程度로 日本 술의 歷史에 있어 重要한 意味를 지닙니다.

勿論, 須須許里 以前에도 日本에는 穀酒의 가장 原始的인 形態인 口噛み酒 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處女들이 항아리 周邊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찐쌀을 입으로 오물오물 씹어서 뱉으면 그것을 모아다가 삭혀서 술로 만들어낸 아주 原始的인 形態의 술이 있었습니다.

口噛み酒는 알코올 度數가 낮은데다가 씹는 過程을 거쳐야 하므로 한꺼번에 많은 量을 酒造해 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須須許里가 傳한 누룩을 醱酵시켜 술을 만드는 酒造技術은 當時 日本의 原始的인 酒造 術에 있어 大 革新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古代에 百濟로부터 傳해진 酒造技術에서 始作된 日本의 술 文化는 變化와 發展을 거듭하며 日本만의 獨特한 形色을 갖추어 가기 始作했습니다.


술과 飮酒文化의 變遷

須須許里(すすきょり)의 누룩을 利用한 酒造 技術은 여러 形態의 술을 만들어 냈습니다. 누룩의 醱酵 狀態에 따라 于先 단 맛이 나는 甘酒(あまざけ)와 뿌옇게 탁한 濁り酒(탁주) , 그리고 이것을 걸러낸 清酒(청주)가 만 들어졌습니다.

1252年, 鎌倉幕府가 鎌倉全體를 調査 했더니 술 항아리가 3萬7千餘 個나 있는 것으로 나타나, 한집 當1個씩 만남기고 나머지는 깨뜨려 술의 販賣를 禁했다는 記錄이 있습니다. 鎌倉時代에 이미 家庭에서 술을 빚는 것이 一般化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當時 日本人에게 술은 어디까지나 祭祀를 爲해 마련하는 祭禮飮食이었고 飮酒 또한 名節이나 吉 凶事에 마시는 아주 特別한 行爲였습니다. 日常的인 飮酒는 아주 破廉恥한 行爲로 여겨졌죠.

江戸時代(1603~1867)에는 現在의 神戸 東部와 京都 南部 等에 술도가가 생겨나면서 釀造業이 發達하기 始作했습니다. 또 江戸와 大阪 京都와 같은 都市를 中心으로 사람의 往來가 많은 場所인 魚物市場이나 旅館 周邊에 선채로 술을 마시는 이른바 선술집이 登場했습니다.

18世紀에는 술과 함께 簡單한 안주도 곁들여 파는 술집이 생겼고, 19世紀에는 高級 料亭이 繁盛하여 宴會가 자주 벌어졌습니다.

각 藩(はん)의 領主의 邸宅에 寄居하며 幕府와 領主와의 公務上의 連絡이나 다른 領主와의 交涉 等을 맡은 이들이 料亭을 主로 利用했는데, 이것이 社交와 料亭이 結託하게 된 契機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술 文化의 發達은 모두 都市地域과 富裕層에 限定된 것이었습니다. 農漁村 等地에도 술도가가 들어서고 庶民들이 日常的인 飮酒를 즐기게 된 것은 明治時代(1868~1912) 以後의 일이었습니다. 明治時代에 日常的으로 飮酒를 하는 風習이 生기게 된 것은 門戶開放으로 因해 從來의 冠婚喪祭와 같은 特別한 날 以外에도 宴會나 잔치가 많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明治 中期 以後에는 淸日戰爭과 露日戰爭에 參戰했다가 故鄕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軍隊에서 술을 마시던 習慣을 퍼뜨리게 되는데 이 또한 飮酒가 日常化되는데 큰 役割을 하게 됩니다.

明治時代에는 洋酒를 마실 수 있는 麥酒홀과 카페도 생겨났습니다. 麥酒홀은 1898年에 처음 登場했고, 카페는 大正時代(1912~1926)에 이르러 大衆化되었습니다. 카페는 洋酒를 마시는 곳이라는 目的 以外에도 호스티스를 販賣 戰略으로 내세우는 살롱과 바의 두 種類로 區分되었습니다. 이로 因해 洋酒를 마시는데도 술을 따라주고 안주를 곁들이는 오늘날의 風習이 生겨나게 된 것입니다.


熱かん과 水割り

日本에서 술을 데워 먹게 된 것은, 全的으로 高溫 多濕한 日本의 氣候로 因해 술 맛이 금세 變하는 것을 抑制하기 爲함이었습니다. 特히, 술도가나 선술 집 等에서는 이문을 남기기 爲해 어떻게든 술의 流通期限을 最大限 늘려야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술 맛을 維持시키기 爲해 始作한 熱かん이 오늘날 日本의 獨特한 술 文化로서 世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日本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飮酒 文化, 술에 물을 타서 마시는 ‘水割り’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이 飮酒 方式이 生겨난 것은 그야 말로 最近입니다. 40余 年 前 酒類業體인 サントリ는 독한 술을 즐기지 않는 日本人들에게 위스키를 팔기 爲해 여러 가지 方法을 講究해야만 했고, 그 結果 위스키를 물이나 飮料로 稀釋해서 마시게 하는 水割り를 考案해 냈던 것이지요. 오늘날 日本술집에서 술을 注文하면 으레 “무엇을 타서 드시겠습니까" 라고 물을 程度로 水割り” 는 一般的인 술 文化로 完全히 定着되어 있습니다.


日本人과 술

이 밖에도 日本은 노래하면서 술을 마시는‘カラオケ’ 술잔이 비기 前에 잔을 채워주는 ‘注ぎ足し(첨잔)’ 그리고 ‘直会’와 ‘無礼講’ 等 그네들만의 獨特한 飮酒文化를 形成해 왔습니다.

直会는 祭祀가 끝난 後 神에게 바쳤던 술과 飮食을 參加者들이 함께 나누어먹는 우리나라의 飮福과 비슷한 行爲로서 宗敎的이고 祭禮的이며 傳統的인 意味를 지닙니다. 이때 술은 人間과 神이 함께 마시고 즐긴다는 意味의 神과 人間을 連結시키는 媒介體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無礼講는 先輩와 後輩, 上司와 部下와 같은 身分의 高下와 相關없이 同等한 立場에서 술을 마신다는 意味로서 社交的이고 社會的이며 한便으로는 享樂的인 意味도 內包하고 있습니다. 身分을 벗어버린 平等한 立場에서 함께 취하고 마심으로써 集團的인 同質感과 結束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要컨대, 오늘날 日本의 술 文化는 이러한 相好 交流와 結束의 意味로서 神과 人間, 人間과 人間의 關係를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神과 어울리고 人間과 어울린다는 古代의 相好交流와 結束의 意味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지요


日本의 代表的인 酒類

百濟의 須須許里(すすきょり)가 傳한 ‘濁り酒(탁주)’

우리나라의 막걸리 같은 濁酒입니다. 이 술은 매우 거친 술이지만, 千數 百年이 지난 오늘날에도 빠른 時間에 만들 수 있고 값도 쌀뿐만 아니라 감칠 맛이 나며 醉氣가 오래 持續되어 庶民들에게 親熟 합니다.

데워먹는 술 ‘日本酒(청주)’

쌀로 빚어 精製한 술입니다. 特有의 부드러운 맛과 香을 내는 日本酒는 멥쌀을 누룩곰팡이로 醱酵시키는 獨特한 製造法으로 만들어진 술입니다. 原來 우리나라에서는 밀을 原料로 했으나 이것이 日本으로 傳해지면서 日本의 高溫多濕한 氣候에 맞는 멥쌀로 바뀐 것으로 推定됩니다. 原來 日本酒는 추운 季節에만 데워 마셨으나 江戶時代 中期부터는 季節과 相關없이 데워 마시게 되었습니다. 日本酒를 차게 한 것을 ‘冷や’ 뜨겁게 데운 것을 ‘熱かん’ 이라고 하는데, 冷や는 보통 컵에 마시고, 熱かん 은 ‘德利’라고 하는 술병에 담아 ‘おちょこ’라는 작은 사기잔에 마삽니다.

地方色을 느낄 수 있는 ‘地酒(토속주)’

각 地域마다 特色을 살려 만든 淸酒를 地酒라고 합니다. 日本 各地에 約2千 個의 釀造場이 있으며 이들 中에는 直接 술을 販賣하는 곳도 있습니다.

度數가 높은 蒸溜酒 ‘燒酒(소주)’

밀, 수수, 고구마, 당밀 等을 알코올로 醱酵시켜 蒸溜 精製한 술로, 度數가 다른 酒類에 費해 相當히 높습니다. 蒸溜酒는 紀元前 3000年頃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西洋에서는 위스키와 브랜디 等으로 發展했고 東洋에서는 燒酒로 빚어졌습니다. 中國에서 蒸溜酒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元나라(13~14世紀) 때였으며 우리나라에는 高麗末期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壬辰倭亂 때 日本으로 꿀려간 朝鮮人 捕虜에 依해 日本에 傳해진 것입니다

負擔 없이 즐기는 ‘ビール(맥주)’

日本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酒類입니다. ‘キリン', ‘アサヒ’, ‘サッポロ’, ‘サントリー’의 4個 會社가 日本의 巨大한 麥酒 市場을 占領하고 있습니다. 日本麥酒의 特定은 ‘季節ビール가 生産된다는 点입니다 디자인부터 맛, 香氣에 이르기까지 各 季節마다 그 季節에 맞는 麥酒를 生産하는 것이지요 또,全國 各 地方의 小規模 釀造業體에서 小量生産하는 ‘地ビール’도 있습니다. 最近에는 麥酒의 맛도 비슷하고 알코올 度數도 비슷하나 價格이 훨씬 低廉한 ‘発砲酒(발포맥주)가 人氣酒類로 急浮上하고 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