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삶의향기 ·····♣/개화산천님 글

황혼 열차표.

무정애환 2011. 3. 22. 05:13

황혼 열차표.

                                                                                                         글 / 개화산천

 

봄 나비도 한철이고

여름 매미도 한철인가보다.

 

가을 메뚜기 한철 뛰어다니다

말없이 어디론가 살아져 가던 깊어지는 가을밤에

달빛어린 문지방 밑에서 울어 지새우든 귀뚜라미소리 구슬픈 것처럼

이젠 사랑했던 분도 황혼열차를 타시려는 건지

나다니는 시간이 점점 짧아만 가는 애틋함에

못 다한 마음을 쏟으려하나 이미 다릿심이 풀린다 합니다.

 

뒤돌아보면 사랑의 흔적에 애간장 녹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애간장 녹던 시절이 녹을게 없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 하리요.

 

지는 해에 제동장치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다

이것저것 다 동원해보아도 세월을 붙잡아 맬 수가 없으니 이를 또한 어찌 하리요.

 

좋은 것, 맛난 것 다 동원해보아도, 윗목 머리맡에 먹다 남은 약봉지만 수북하고

사랑했던 마음이 이젠 내게 되돌아와 회환의 눈물만 가득한 나날이

어제 오늘 내일로 이어지니 이를 어이해야 한단 말이요.

 

황혼열차에 오르는 시간을 늦추자고 사정해 보나

그건 마음대로 할 수 없다하니 막막하고, 벌써 가슴속엔 잔잔한 목 막힘에 어께 들썩임의

가느다란 흐느낌의 눈물소리 들려오니 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어이 혼자 감당하리요.

 

하늘의 별처럼 수 없이 떠오른 사랑했던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봤던 그 세월이 어제 같았는데 벌써 황혼열차표를 사야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고 아랫도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길목지기 되어 두 손을 벌리고 서 있습니다.

 

어린애처럼 두 손 벌리면 못갈 줄 알고 때를 써봅니다.

조금만 늦춰보라고, 그러면 못 다한 사랑을 내 마음의 보따리에 싸서 넣어보겠다고

그 분이 배고플 때,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을 때, 배고픔도 보고픔도 다 채워주겠다고

새끼손가락 걸자고 사정을 해 보아도 엷은 미소로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인생살이 별것 없다는 도통한 사람인 듯, 두 눈엔 힘없는 눈물이 내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으시는 그 분의 모습에서 사랑의 애간장 녹는 몸부림을 나는 수도 없이 부여잡고

망연자실 합니다.

 

달콤한 사랑에 빠져서 언제나 달 줄만 알았던 사랑이 이렇게 애간장 타는 사랑으로

내 앞에 설줄 알았다면, 황혼열차표 사기전에 마음의 보약을 더 진하게 다려 드릴 걸

이제 와서 한 번에 다 드리려하나 이미 때는 소화할 힘이 없다 합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힘 있을 때 내 앞에서 농담처럼 하던 말이

이제 생각하니 아마 그 분은 오늘이 올 줄 미리알고 내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너에게 몸과 마음을 미련 없이 다 주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하는 그 말에

내 가슴이 더 아파 옵니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는데, 난 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 분의 마음에도

내 사랑이 있었나 봅니다. 나를 잊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열차표를 사서 당분간 내가 보관하기로 하고 우린 서로를 다독입니다.

열차가 오기 전에 나는 보약을 준비합니다.

다 드리지 못한 못 다한 보약을 마음에 담고 단단히 대기를 합니다.

 

그동안 드신 보약의 무게가 무거워 달리던 열차의 바퀴가 중간에 빠져서 탈선을 하면

그때 나는 다시 그 분의 사랑의 날게 밑으로 들어갈 속셈입니다.

 

그리고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내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 분의 허리끈에 내 마음의 허리끈을 단단히 붙들어

맬 생각입니다. 그동안 못해드린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다 해드릴 생각입니다.

 

황혼열차표를 사서 고운 봉투에 넣어 선물하는 그날 내 마음의 완성도를

그 봉투 안에 곱게 포장해서 넣어 드릴 것 입니다.

 

미련 없이 사랑했다고 당신 있어 정말 행복했다고 이슬 같은 눈물방울 달고

그 분의 가슴속에 포근히 서며 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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