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독백.
글/개화산천
너를 보고 싶으나
만나 달라 애원 할 수가 없다.
바쁘다는 너의 마음을
뺏을 수 없어서 오늘도 나는
너의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전화기를 든다.
이렇게 보고 싶어 전화를 하는 내 마음을 너는 모를 것이다.
너도 나처럼 늙어 팔다리 힘없어지고 할 일 없어 늘 천정만 바라보다
답답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시내 공원이며
사람 모이는 곳이면 볼일도 없으면서
볼일이 있는 양 헤매 도는 일상을 두고
너는 나에게 바람 부는 노인이라 원망도 많이 했었지.
이제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시간은 많지 할 일은 없지
늙어가는 이 마음에도 버리지 못한 사랑의 옹달샘이 아직도
샘솟고 있음을 너는 감히 짐작도 못하리라.
그 많은 시간을 오늘도 누굴 만나 다 허비할까를 생각만 해도
내 인생이 서글프기 한이 없다는 사실을 너는 알기나 하겠는가.
밤에 한잠만 자고 나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내 마음을 너는
아직 젊어서 모를 것이다.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노인의 말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생 잠깐이란다.
나도 젊을 땐 몰랐는데 내가 노인이 되고 나니 인생이 이렇게
길고 긴 날도 있다는 현실 앞에 하늘은 뭘 하고 있을까 나 같은 사람 얼른 잡아가지
않고서…….
이렇게 원망을 해 보지만 죽음은 싫어서인지 아프면 병원 앞에 나도 모르게 내 발길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곤 노인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라 는걸. 느끼곤 한단다.
사람 늙으면 쓸 곳이 없단다.
늙어 주굴 주굴 해지지, 핏기 없어서 얼굴은 창백해지지, 힘 떨어져 걸음걸이는 삐딱대지
돈 떨어져 돌아보는 사람도 없어지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 앞에 때론 죽고 싶다는
마음이 한두 번 들 때가 아니란다.
그저 원이 있다면 어느 날 갑자기 아프지 않고 단번에 목숨을 거둬 갔으면 하는 바램뿐
그게 죽음을 복 받는 것이라고 늘 마음속에 그러길 소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모를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허무할 땐 누가 불러주길 기다릴 때도 있단다.
그래서 요즘은 무도장에도 가보고 최소한의 돈으로 가서 시간 보낼 곳을 찾게 된단다.
지나다 사람 모여 있는 곳이면 그곳이 궁금해서 누가 시국 연설이라도 하면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기도 하고, 필요 없는 남의 이야기도 듣고 혼자 쓴 웃음을 지어보기도 한단다.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무료 봉사도 해 보고 별 생각을 다 해 본단다.
지나다 내 몸에 노인 냄새 날까봐 아침이면 비누로 온 몸을 닥아 보기도 하고
갑자기 쓰러져 죽지 못하고 고생 할까봐 힘없는 팔 다리를 위 아래로 흔들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게 내가 사는 전부가 되고 있단다.
운동이랍시고 볼일 없는 이곳저곳을 사방팔방 돌아다녀도 보고 하는 것이
일과 아닌 일과가 되어가고 있단다.
이런 시간에도 오직 너의 모습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가 있다는 사실은 아직 내게도
마음속엔 젊음의 흔적을 다 지우지 못하는 희망배가 떠 있는 모양이다.
너를 만나면 무슨 말로 너를 맞이할까 나 혼자 생각하며 핏기 없는 마음에
너의 모습을 그리며 잠깐이라도 젊음의 환상에 나를 돌아본다.
십년만 젊었어도 너에게 내 모든 것을 마음 놓고 줄 수가 있었을 텐데 하고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나 혼자 안고 너를 기다린단다.
노인 추하지 않게 늙기 위한 방법을 나는 오늘도 모색한단다.
살아있는 동안 지금도 나는 나를 발견 한단다.
힘없어도 정신은 아직 놓아선 안되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