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한 빛을 보며
아름답게 살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 정 순
지 은 이
황 정 순 (黃 貞 順)
- 1932. 3. 29 부산 동래 출생
- 동래여고 졸업
- 글 모집 ‘부부 영상 편지’ 당선 (1989. 7. 1 부산 MBC TV 방영)
- 부산일보 글마당 (운문부) ‘봄’ 당선 (2002. 3. 29)
가족 사진 (부군의 칠순시)
부군과 함께 간 미주여행
친구들과 함께 간 일본여행
영롱한 빛을 보며
아름답게 살련다
책 발간 정보 수록 페이지
(c) 2004 황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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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빛을 보며
아름답게 살련다
황 정 순
목 차
머리말
글모음 출판을 축하하며
제 1 부 영롱한 빛을 보며
영롱한 빛을 보며
진실
행복
봄
제비
꽃밭에서
가을
정
별
낙원
목욕
소망
즐거운 노래를 불러요
장미꽃
산
자연
제 2 부 인 생
나의 첫 살림
결실
기도
넘어야 할 고개
내일을 바라보며
남편의 정년퇴임
친구
명상
명절
자업자득
사랑하는 가족
고희
붉은 악마
여생(I)
인생
치과
제 3 부 나의 영원한 동반자며, 길벗인 당신에게
나의 영원한 동반자며, 길벗인 당신에게
착실한 며느리들
내리 사랑
장마철
여행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
하와이
여생(II)
나의 영어 공부
결혼 피로연때 불렀던 노래
제 4 부 부군의 자원봉사
부군의 자원봉사
자원봉사 활동의 소개
이 사람의 삶
부군의 TV 출연 및 신문 기사
저자 연대기
어머님께 드리는 글
머 리 말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 나이 73세,
나의 삶을 뒤돌아 보면 정말 세월은 유수같이 빨라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고마움과 아쉬움이 함께하며 서툰 글로 내 삶의 실상을 엮어 봅니다.
사람은 바르게, 밝게 살아야 한다는 나의 좌우명.
가정이(부부가) 화목해야 모든 것을 꽃 피울 수 있다는 나의 인생관.
서툰 글을 책으로 펴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글모음 출판을 축하하며
당신의 글모음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못난 남편을 만나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고생을 시켜
무엇이라 할 말이 없군요.
마누라와 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못난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못난 사람이 좀 되어 볼까요.
시어머니에 대한 정성은 두말 할 것도 없었고,
남편 잘 받들고,
그야 말로 쥐꼬리만한 공무원봉급으로 한때나마 아버지 없는
큰댁 조카들 셋을 친자식 이상으로 돌봐 주었던 일,
시댁일가 친척이나 이웃에 대한 깊은 배려 등...
지금 칠십 나이에 아직도 소녀같이 순진하고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는 고운 마음씨.
내가 당신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군요.
아들 넷이 올바른 사람으로 자란 것도 당신의 힘이 큰 것 같소.
문학에 소질과 취미가 있는 당신 덕으로,
어느날 온 가족이 TV에 출연하여 직장 동료와 이웃들의 칭찬을 받았던
일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군요.
그 취미와 소질의 개발에 일찍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오.
지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겠소.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남편 james(제임스) 씀
제 1 부
영롱한 빛을 보며
영롱한 빛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고요히 흘러가는 저 소리,
속삭이며 쉬지 않고 가네.
그것이 무엇인지
다들 반기네,
누구나 갖고 있는 보석이여.
미처 보지를 못하네,
스쳐가는 것일까?
지나쳐 가는 것일까?
그냥 잊고 가네.
그래도 뒤돌아 보며 다시 찾네,
그것이 무엇인지(양심)
다들 기뻐하네.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석이라네.
진 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또한 영롱한 아름다운 빛을,
너는 못 본체 지나치는가.
아니 나도 몰랐네,
바로 내 마음에 있는 것을.
깊이 깊이 가리워져 있는 것을
꺼내기가 어려웠던가.
그렇게도 아름답고 고운 것을
감추고 있었지요.
진실아, 너는 진실로 남아
너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밝은 빛은
눈을 부시게 하네.
행 복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돈, 높은 지위
순간적인 것이 아닌
즐거운 진정한 행복.
몸도 마음도 건강함이
아름다운 행복이 아닐까요.
쉽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고,
어렵게 헤매면 멀 - 리 있을 것이고,
생각이 만들고 마음속에 있는 것.
양심에 가책 없이 밝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하게 삽시다.
봄
소리 없이 입맛에서
내 발을 멈추게 하네
봄 내음이여
또 다정하게 속삭이누나.
봄이 온다고요
땅 밑에 움츠렸던 생명들
기지개 펴면서
쑥쑥 얼굴을 내밀고,
햇빛 쪼이며 옹기종기
아! 언제나 새로운 봄이여.
봄이 오네
말없이 내 곁에 다가와
손을 잡고 끄는구나
봄 동산으로.
봄바람에 머플러
하늘하늘 멋을 내고
가고 오고 새 소식
새 희망의 씨를 뿌리며
아! 언제나 새로운 봄이여!
※ 2002. 3. 29 부산일보 글마당(운문부) 당선작 (이날이 마침 내 생일이었다) 뽑고나서
최영철 (시인)
황정순님의 시 '봄'은 봄의 기운을 무척 활기차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오네', '속삭이누나', '온다고요', '봄이여', '끄는구나'와 같이 종결어미를 자유롭게 변화시킨 부분의 탄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아장아장 걸어오기도 하다가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뜀박질을 하기도 하는 어린아이의 보폭을 닮았다.
2연과 4연의 마무리 행에서 감탄사와 느낌표가 쓰이고 있는데 강한 감정 표현으로 느껴진다.
☆ 내음은 ‘냄새’의 경상도 방언입니다.
제 비
봄을 노래하며 날아온
부부 제비
언제나 반가워라.
살던 집 다시 찾아와
빙빙 돌고 있네
안녕하며 꽈리 불때
나도 인사하지
어서 오라고요
의좋게 날아온 부부 제비
예쁘기도 하지
재잘거리는 새끼 입에
입맞춤하며 달래고
어느덧 새끼는 둥지를 떠나고
또 올 것을 약속하고
몇 번이고 주위를 돌면서
꽈리 불며 의좋게 강남으로
날아가는 부부 제비.
꽃밭에서
철철이 피는 꽃
색깔도 모양도 향기도
제각기 자랑하면서 손짓하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야
활짝 웃으며 그 아름다움
사람들은 꽃밭을 거닐며
사진도 찍고 스트레스도 풀고 즐거워한다
벌 나비는 훨훨 날아
꽃밭에서 춤을 추며
사랑을 속삭이네
어느 장소라도 꽃이 있으면
훌륭한 꽃밭이다
잠깐 잠깐 꽃을 보며
아 ! 예쁘다 한 마디 하면
꽃도 방긋
대화도 하고 마음도 웃는다
꽃이 떨어지고 잎이 나면
또 다른 아름다운
푸른빛을 더욱 선명하게
새로운 삶을 준다.
가 을
가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모두가 시인이 된다, 감정은 저절로
가을은 풍성한 계절 마음의 여유로움과
차분히 뒤돌아 보며
모자라는 것을 깨우쳐준다
가을은 손짓하며 우리를 부른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결실의 계절, 국화 향기
그윽한 성숙함인가
가을은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
삶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가을을 만끽해 보자.
정
미운 정 고운 정
내 맘을 설레게 하네
못다 한 아쉬움만
남기고 떠난 사람
이것이 정이런가
때로는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심사
돌아서면 후회하는 것
이것이 정이런가
미운 정 고운 정
여운을 남기고 떠난 사람
그 때 그 모습이 떠오르네
이것이 정이런가.
별
나의 넷 별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저 별들
그 가운데 내 별
별, 별, 별, 별
수, 욱, 혁, 하
많은 사람들 중의
너의 사 형제
의좋게 서로 서로
의논하고 도우며
바른 길로 힘차게 전진하라.
낙 원
누구나 가고 싶은 곳
그 곳은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아
성실과 인내로
부끄러움 없는 곳
바로 낙원이어라
눈부신 햇살에
향기로운 꽃!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여
호랑나비 사뿐히 키스 할 때
정녕 그 곳은
낙원이어라
알알이 맺은 열매
조심조심 천지 신령이시여
수확의 그 날까지
노력의 대가 받을 때
바로 낙원이어라.
목 욕
목욕은 정말 기분 좋다.
파-란 맑고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세상 만사가 편하다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목욕
몸도 마음도 가뿐하게
또 내일을 활기 차게
깨끗하게 단장시켜주네
물 한 컵 마시며 갖는 여유
목욕은 정말 기분 좋다.
소 망
거창한 소망보다
깨끗하고 소박한 바램은
누구나 성취 할 수 있다
하나 하나 실천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야
즐거운 노래로 나를 리 - 드 하고
그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며
주섬 주섬 소망을 담으리
복된 결실의 소망을
줄줄이 이어지는 진실한 소망은
모두들 반기며 밝게 비추어 주네
하나 하나 바램을 쌓아
큰 소망이 되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큰 소망이 되라.
즐거운 노래를 불러요
신나는 노래를 불러요
마음이 싱글벙글 웃는 노래를
저절로 용기가 솟는 노래를
즐겁게 춤을 추며 노래 부릅시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괴로울 때도 노래는 흐른다
인생은 다 섞여져 있는 것
즐거운 노래를 불러요
시작할 때도 마칠 때도
팡파레 연주를 하세요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추어
즐거운 노래를 마음껏 불러요.
장 미 꽃
예쁜 꽃잎 속속이 머금고
색색이 크고 작은 장미꽃이여 !
미소짓는 아름다운 여인이어라!
장미꽃은 가시가 있네
누가 너를 헤칠세라 염려하며
아! 향기 짙은 꽃이여!
그 자태 그 향기 뽐내려고
아픈 가시가 돋았는지
옛-날 장미꽃을 보며
밝게 웃던 한 소녀
오-랜 세월 쌓여도
마음은 그 자리에
연인들은 한 송이 장미꽃을
주고 받으며
사랑에 푹 빠져든다.
한아름 꼭 껴안고 싶은 마음이여.
산
높은 산, 낮은 산,
웅자한 산
신비한 산
험준한 산
줄줄이 무리를 이룬 산
잔잔히 흐르는 산
아름다운 산
사람은 그 무엇을 바라며
또 무엇을 배울까?
명산, 영산
말없이 모-든 것을
감싸주는 인자함인가
산은 좋다
나는 등산가는 아니지만
텔레비전에서 이름 있는 산을
잘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놀랍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자 연
자연은 무궁하다
묵묵히 지켜본다
무언으로 인간에게
진리를 깨우쳐 준다
공존 공생하면서
덕도 주고 해도 준다
사람은 자연의 신비함과
오묘함에 기적을 바라며
얻고자 함은 자연의
묘기인가 요술인가?
결코 우연한 것은 없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연 속에 모든 생멸은 이어지고
우리의 인생은 자연과 함께 영원하리.
제 2 부
인 생
나의 첫 살림
나무 때고 우물 길어 밥 짓던
내 젊은 시절
장날이면 유일한 나들이
이것 저것 장 보느라면
어느새 장은 파장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살림살이,
시어머님 모시고 조카들과
단란했던 한 때
전깃불이 없었던 겨울밤은 길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어려웠던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여.
가는 세월속에 나도 가네
모든 것은 변하며 새로운 것을
얼마나 시간이 흘러
우리 부부는 가보았지
울산온천 가면서
따뜻했던 이웃들
그때 그 사람들이 그냥 있을 것만 같아.
그 자리엔 아파트가,
기억도 생생하게
내 인생의 첫 장을 연 곳
잊을 수 없구나.
주) 내 인생의 첫 장(첫 살림)을 연 곳은 경상남도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이다.
결 실
땀 흘려 가꾼 결실은 보람이 있다
좋은 결실을 맺기위해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 하나 정성들여 가꾼 것은
헛되지 않는다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워도
사람들은 기어코
얻으려고 애쓴다
결실은 삶의 가치를 준다
환희와 행복을 준다
쉽고도 어려운 것
욕심만 빼고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거야
무엇이든 결실은 있다
희망의 결실을.
기 도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두 손 모아
간절히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
경건하고 아름다워라
믿음으로 진리를 보며
욕망의 물결에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며 나를 찾는다.
기도는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것
마음에 하고픈 말을
구애 없이 토한다
기도 할 때는 고요하고 편안해 진다
소원성취를 기원하면서
마음의 때와 번뇌를 씻어 준다.
감사의 기도를 아름다운 염원으로
정성 들여 기도하는 자세
삶의 물음에 답은 올 것이다.
넘어야 할 고개
사람이 살아가는데
고개 고개 몇 고개인가?
그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푸념말고 열심히 내 소임을 다 하는거야
힘들고 어려워도 결과는 좋은 것
모진 풍상만 없으면 다행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다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고
그것이 우리 인생살이야
다 감싸주는 진실한 사랑만 있으면
행복한 거야
내기 만들어 내가 받는 것
원하는 희망의 그림을 그려보자구요
꼭 기회는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훨씬 쉽겠지요
그런 가운데 살며시
복둥이가 들어오는 것,
들어오는 복을 받아야지.
내일을 바라보며
사람은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내일 또 내일 이렇게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긴 인생여정을 향해
목적지에 열심히 들 가고있다
나도 열심히 왔는지 육십 대
육십 오세 노인
이년 여 남기고 있다
내 나름대로 내 목적지에 갈 수 있을지
조금은 인생을 알 것 같은 데
모든 것이 부족한 나
죽을 때까지 배워도 못다 배우는 것
여러 사람과 대화하면서
내일을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야지
욕심은 금물이다
정정당당하게
희비는 반반씩
그렇게 짜여져 있는
우리 인생을
조화롭게 사는 것이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겠지.
남편의 정년퇴임 (1995. 2. 28)
남편의 교직생활 41년
오늘은 정년퇴임 하시는 날
돌아보면 먼 길인데
엊그제 같습니다
결혼생활과 동갑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한 것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보람과 용기로서 무사히 당도하여
정말 고맙습니다
깨끗하고 떳떳하게 정년퇴임하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인생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
이제 한가지 일을 꺾었으니
다음으로 갑시다.
열심히 즐겁게
우리 함께 활짝 웃으며
밝은 내일을 향해 나아갑시다
언제나 마치면 새로 시작하는 것
영원한 친구로서 파트너로서.
MBC-TV와의 단독 인터뷰는
정말 훌륭했었다.
친 구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지
어릴 적 친구, 동창친구
이웃친구 등 등 친구.
진정 허물없는 친구가 그리 쉬울까?
주는 마음으로 만나야지.
아무리 친한 사이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매력과 품위로서,
순수한 의로서 변함없는 우정.
한번씩의 모임 오랜시간
짧은시간 빠르게 흘러간다.
유-모어로써 세상사를 엮어가며
즐겁게 웃고나면
다정다감한 친구와의 만남이
소중하고 감사하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나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리
친구들의 행운을 빌며.
명 상
하루에 한번은 꼭 명상을 하라고 한다
참 좋은 거지
마음도 가라앉고 정신도 맑아
하루 계획도 세우고
차분히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나의 하루 하루를 침착하게
건강을 해치는 짓을 하지 말 것
아름다운 생각 염원으로
내 마음을 채우며
기분 나빴던 것은 밀어내고
여유 있게 자유인이 되자
아집에서 벗어난 노력을
반성의 명상을 하자
내 마음 제자리에.
명 절
설, 추석은 우리 고유의 대 명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명절 쇠는 것도 다르다.
전통 미풍은 지키되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민족의 대이동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서다 하는 차량,
모든 교통 수단은 만원.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소요시간 몇 시간
어디서 어디까지는 또 몇 시간 소요
뉴- 스에서 연달아 흘러나온다.
나도 서울에 자식들이 있다보니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꼭 설, 추석이 아니드라도 너희들 편리한 시간에 다녀가라는 말을 종종 한다.
무엇을 타던 시간이 걸려도 고향 가는 것이 명절이라고 하며
특별한 경우엔 어쩔 수 없지만 조상 성묘도 하고 가족 모두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차례상에 정성 드리며, 대화로
서로의 생활을 보며 선물을 주고 받고하는 따뜻한 모습도 또한 명절의 풍습이다.
아이들은 그때 사촌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렇게 만나지 않으면 사촌도 만날 기회가 없다고 한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노부부만이 조용히 있다가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맞는 명절은 정말 흐뭇하다.
그렇다,
외국에서도 무슨 무슨 축제 하면서 같이 어울려서 정을 주고 받으며 함께 즐긴다.
그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다.
우리의 대 명절인 설, 추석은 우리 고유의 문화로 영원할 것입니다
안전을 기원 하면서.
자 업 자 득
글 그대로 내가 업을 짓고 내가 받는 것,
모르고 지나가도 그것이 다 원인이 있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 했지요.
내 나이 만 65세(1997년 3월29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편이 보낸 생일 축하편지.
나는 조금 놀랐다.
경로우대증이 나오면 정말 노인으로.
감회와 감사의 말로 내 가슴이 뭉쿨했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나와는 세 살 차이,
세월을 거슬러 뒤돌아보게 하며.
남편의 회갑 때,
내 마음에 하고픈 말을 편지를 써 당선되어 MBC-TV에 출연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답장이었다.
뿌린대로 그둔다는 속담.
세월은 시계처럼 정확한데 마음은 그대로,
무엇을 살피는지? 느릿 느릿 하루 해가 저문다.
나이들어 인생을 헤아려봄도 여생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 이라고 할까?
주고 받는다는 이치
이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건가요.
사랑하는 가족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
각자 가정을 이루어
가족이란 단위가 생기고
사회생활의 공동체가 된다
가족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우리 가족이란 인연으로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되고
동서간이 되고
사촌이 되어
우리는 따뜻한 가족이라네.
사랑한다, 나의 가족들.
내 나이 칠십, 나는 고마울 뿐이다.
다들 착실하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부디 행복하게 자 ㅡㄹ 살기를 기원한다.
고 희
세월이 나를 업고 뜀박질하며
고희라 일러주네
유성처럼 지나간 시간들,
삶의 고랑 고랑 가꾸느라
잊었던 네 모습 내 모습
이제 우리 옛 이야기나 하며
푹 쉬어나 볼까
고희는 나를 반겨주며
미소 짓는구나
힘찬 악수로 감사한 마음을 채우고
짝궁과 손잡고 함께 걸어온 길목 길목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이여
우리 후일을 기약하면서 칠순
행운의 숫자를 꼭 잡자고요.
붉 은 악 마
온 나라가 붉은 악마로 장관이다.
너도 나도 걸치고 흔들고 장식하고
일렁이는 파도는 화창한 햇빛에
아름답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부드러움과 강한 의지로
질서 정연하게 똘똘 뭉쳐
온통 세계를 놀라게 하네
박수 리듬에 맞춰
대한민국을 외치며
손가락 하나에 기를 모아
필승을 다짐하는
훌륭한 굳 아이디어
정말 멋진 코리아로
우뚝 서자
2002 WORLD CUP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2:1로 승리하여 8강전 진출..
2002, 6, 18 (오후 8:30)
여 생 (I)
내 생활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노래 부르며,
바뀌는 세월 속에
두루두루 무치며 그렇게 이렇게
밝게 웃으며 살리라.
울고 웃는 우리 인생
바르게 살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지,
진정 아름다운 삶을
내 결코 이루리라.
멋있는 여생을 심고 가꾸며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둥글게 둥글게, 안으며 안기우며.
우는 소리 하지말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다정한 모습으로
깨끗한 모습으로.
나의 취미생활을 하면서,
Happy end로.
인 생
공수래 ,공수거
말없이 조용히
떠나련다.
아무도 같이
갈 수 없는 곳.
각자 가는 길이 있다,
내 갈 길로 가야지.
순리대로 갈거야.
치 과
치과 ,치과, 치과,
온통 내 눈에 보이는 것.
나는 이가 아파
차과에 치료하러 다녔다.
내 나이 73세,
틀니를 해 넣고 나니
불편하구나.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잘 있어 다오.
이젠 밥을 먹겠다.
12월 24일이면 결혼 50주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병치레로 가족에게 걱정만 끼치고
남편의 지극한 정성으로
나는 일어섰다.
내 마음은 설레인다.
제 3 부
나의 영원한 동반자며, 길벗인 당신에게
나의 영원한 동반자며, 길벗인 당신에게
- 1989. 7 .1 부산 MBC TV 방영 부부영상편지 당선작 -
여보, 우리가 결혼 한 지 어언 35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몇 번이나 변했는지
새삼 세월의 빠름을 실감케 하는군요.
금년에는 당신의 회갑을 맞아 더더욱 감회가 깊어지는군요.
변하지 않는 것은 만날 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우리들의 마음.
나는 결혼초야에 당신하고 약속했지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사랑의 끈을 꼭 잡고
절대 싸우지 않고 살겠노라고.
부부가 오손도손 의논하고, 정답고 따뜻하게 한 계단,
한 계단 성실하게 살아 갈 것을 우리는 맹세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소녀 시절부터 꿈꾸며 가장 갈망했던 것이며,
그런 이유는 저의 친정 부모님의 생활상을 보면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불만스럽게 화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하던가요.
당신은 다행히도 인자하시고 자상하시면서
자기 책임을 철저히 완수하며, 가정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항상 당신이 부족해서 잘 못해 주어 미안하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당신께
나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지간이라도 서로 예의는 있어야지요.
제가 잘못할 때가 더 많지요. 언제나 양보하는 당신,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이 더 많고 뜻대로 되는 일이 그리 쉽나요.
하나 부부애의 끈으로 풀어 가야지요.
결혼 초부터 몸담아 온 직장을 한길로만 걸어온 당신.
이제 자식들도 다 장성해서 결혼해 다들 직장따라 따로 살고 있고,
막내도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고 나니 우리 부부만이 남는군요.
제각기 갈 길을 가는 것이 순리인지라 자식들이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자식들은 당신의 직장인 학교가 집 가까운데 있어서
편리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들이 신혼여행도 못 가보고 신혼생활도 못해 봤으니
이번 기회에 신혼으로 돌아가는 기분으로 즐겁고
건강하게 사시라고 하는군요.
때가 되면 아이들이 잘 모시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당신의 회갑을 축하드리며 건강을 빕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걸어 온 길을 좀 더
아름다운 꽃길로 가꾸면서 당신의 동반자로,
또 길벗으로 영원히 함께 가겠습니다.
당신의 아내 황 정순 드림
* 남편의 회갑을 축하하는 편지로 TV 방영 후 좋은 평과 부상을 받고,
부부가 함께 회갑기념 일본 일주 여행을 다녀왔음.
착실한 며느리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들만 넷이라고 하면 ‘아이구, 욕심도 많지’ 한다. 아들이고 딸이고 상관없다. 며느리도 되고 딸도 된다. 건강하고 착실하면 되지. 각자 성실하게 사는 모습이 고맙다. 사랑한다.
무엇하나 쉬운 것은 없다, 이 세상에. 힘들고 어려워도 내 가정 잘 지키고 묵묵히 맡은 바 의무를 충실히 하면 행운이 오는 것.
나는 생각하면 복에 겨웠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모자란 점을 이해해다오. 사랑하는 며느리들, 행복하여라.
내리 사랑
사람들은 내리 사랑이란 말을 잘 한다. 말 그대로 내리 사랑이다. 내 자식 키울 적 보다 손주가 더 귀엽다고 한다. 그렇다, 젊었을 적에 느껴보지 못한 그 무엇이 와 닿는다.
내리 내리 사랑이 이어지면서 가꾸고, 정성들여 활짝 꽃을 피우고 충실한 열매를 맺으리. 내리 사랑은 귀중한 것, 아름답고 건강하게.
소중한 내리 사랑, 사랑을 듬뿍 주면서 구김살 없이 밝게 키워야 한다. 이 나라에 큰 일꾼이 되어야 한다, 잘 돌보아야 한다.
장 마 철
우리 속담에 7월 장마는 꾸어서 해도 한다 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7월 장마가 시작되었다. 후덥지근한 날씨, 장마철은 더 주의해야 한다. 조금 전만 해도 가물어서 난리였는데 장마가 시작하면서 쏟아지는 폭우는 많은 피해를 내고 한 달을 끈다.
항상 장마에 대비를 요하지만 늘상 이재민이 나온다. 왜 이렇게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7월에 오는지. 아무튼 7월 장마는 어김없이 시작해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면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무슨 조화인지...
7월이 되면 적당한 장마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여 행
여행은 마음의 보약이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너무 몰두하다보면 때로는 싫증이 나고 피곤하다. 또 능률도 떨어지고 건강에도 해가 온다.
우리의 삶을 보다 즐겁고 보람되게 하기 위하여 여행은 심신의 건강에도 좋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즐겁게, 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갑절의 효과를 본다.
여행은 보고, 듣고, 느끼고, 빠르게 피부에 와 닿는다. 당장 집을 나서면 배우는 것. 우리의 삶은 지식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실상을 보는 순간 나는 감사한 마을이 앞선다. 이렇게 깨우쳐 주는 세상사, 인간사. 생각이 달라지며 돈하고 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나를 감동케한다.
내 나이 60세부터 해외여행을 갔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모두 살고 있었다. 모두가 하늘아래 햇빛과 달빛, 별빛. 빛을 보며 기후와 풍습, 언어 색깔, 생김새, 음식, 의복, 문화도 다르고, 지, 수, 화, 풍에 의하여 경치도 달랐다.
아담하고 예쁘장한가 하면, 웅장하고 상상을 넘어 사람 마음을 압도하는 것, 섬세하고 찬란한 것, 신비로운 것.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잘 조화롭게 자연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 또한 그 속에 모든 생명은 살고 있었다.
우주만물이 일체이고 공동체이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으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같았다. 사람 마음은 다 같으니까.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은 복되게, 게으르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못살고. 가정이나 국가나 부강해야 한다.
어디나 강약은 다 있었다. 밝은 면이 있고, 어두운 면이 있고, 이렇게 세상사람들은 살아왔던 것. 더 앞서간 나라와 뒤떨어진 나라와의 차이도 있었다.
어쨌던 이 시대는 세계가 일일권이며 정보화 시대다. 바른 마음으로 착실히 쌓아가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호화 사치 여행이 아닌, 차원 높은 여행은 가치가 있다. 성실하게 저축해서 한편으론 값지게 조용히 베풀고, 보람된 여생을 보내련다, 70세를 바라보며.
Seeing is believing.
백문이 불여일견.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 (일본 큐슈)
여고 동창 친구들과 합께 회갑기념으로 일본 큐슈 여행을 갔었다. 동갑내기 오랜 친구들이다. 모아 두었던 곗돈에 모자라는 것은 각자 부담하고 3박4일로. 일행은 열 한명, 때는 사월이었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 잘 다녀 오라는 남편의 전송을 받으며 김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마냥 즐거운 표정, 뜻 깊은 여행을 축하하며 탑승했다.
김해에서 후꾸오까까지는 비행시간 30분. 우리는 놀랐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 우리는 일본이란 나라에 관심이 많았다. 불행했던 과거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입국수속은 좀 까다로왔다. 날씨는 화창했으며 부산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일본사람들의 친절은 몸에 배어있었으며, 그리고 조용하고 질서가 있었다. 배울 것은 배워야겠다.
나는 유심히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달리는 차창밖으로 경치를 바라보았다. 산에 나무(스기)들이 쭉 쭉 바르게 한줄로, 같은 간격으로. 인상적이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여행일정에 들어갔다.
벳푸는 유명한 온천지로 온천의 질도 우수하다고 하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 쉴새없이 열탕과 열니, 열기를 뿜어내는 곳. 이것을 지옥이라고 하며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벳푸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일찍이 이국적이었다고 하는 나가사키. 포르투갈, 네덜란드와의 무역항으로 발전한 곳, 유럽문명은 나가사키로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이차대전의 흔적을 보며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했고 마음 아팠다. 과거는 잊어버렸는지, 그냥 묻어두는 것인지, 각자 생활에 바빴다.
감사한 마음과 우정을 느끼며 봄비가 내리는 길을 달리며 낭만에 젖어본다.
하와이 (호놀루루)
하와이의 현관인 호놀루루공항에 내려서면 레이를 걸어주는 환영으로 관광객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크고 작은 24개의 섬으로 된 하와이제도. 행정적으로 아메리카의 50번째의 주라고 한다. 미국일주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하와이에 들렸다.
태평양의 낙원, 레이와 무무우의상(衣裳), 훌라댄스, 하와이언 키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알로하의 문자가 친근감을 준다.
호놀루루는 활기가 넘치며,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근대적인 건물들이 야자의 가로수와 함께 로맨틱한 무-드였다.
호놀루루의 기후는 이상적이라고 하며, 가장 추울 때가 평균 22도, 가장 더울 때가 평균 26도. 우리가 갔을 때가 8월 중순이었는데 덥지도 않고 다니기에 좋았습니다.
인종은 다양하며 혼혈인이 많다고 한다. 꽃이 아름답고 푸른 나무, 과일이 많고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반바지에 알로하 셔츠, 길거리에는 비키니 차림도 볼 수 있었다.
와이키키해변, 하와이를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안. 해안도로에 즐비한 상점, 여행객들은 선물을 고르는 사람, 그냥 구경하며 거니는 사람. 그것 자체도 관광이었다.
오래 전부터 들었던 와이키키해변, 나는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갔다. 헤엄은 못 쳐도 모래가 보드러우며, 바닷물이 매끌매끌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가까웠으며 연장 2킬로에 달하는 모래사장에는 사철 해수욕객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적에는 밤에도 해수욕객이 있었다.
일광욕, 카누우, 요트, 서어핑을 즐기며, 태평양의 파도도 여기서는 산호초에 걸리어 약해지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는다고 한다.
포-즈도 각자 자유로이 여유가 있었다. 또 먹을 것을 가지고와 전을 벌려 먹는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모래사장을 다니는 먹거리 장사도 그랬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보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나라 해수욕장과는 다른 광경, 반성해야겠구나.
호놀루루의 밤거리는 또 다르며 상점, 상인, 관광객들로 흥겨웠다. 한국 상인도 많았으며 일본 상인들은 저들의 상표로서 조합을 만들고 있었다.
관광 코-스를 둘러보며 이민 1세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 넓은 사탕수수 밭, 파인애플 밭, 그 후손들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하와이 왕조시대의 궁전은 미국에서 유일한 왕궁이라고 하며, 태평양전쟁 발단이 된 일본 해군 항공기에 의한 진주만 기습. 지금도 침몰된 채 군함이 보존되어 있었다. 포리네시안 민속촌은 볼거리가 많았으며 하와이 여행을 장식해 주었다.
여 생 (II)
사람은 일정한 때가되면 여생을 맞게 된다. 인생의 후반기를 더 중요시하며, 보다 여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기를 바라며 설계하고 가꾸어온다. 시대가 바뀌고 생각이 달라져도 여생의 희망은 같을 것이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하신 남편, 퇴임 전부터 마음 먹었던 영어로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부산광역시 자원봉사 센터의 영어 통․번역 봉사단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한 주일에 한 번은 외국인에게 한글과 우리문화를 가르치고, 한번은 김해공항 국제선 안내 데스크에서 자원봉사 하신다. 그야말로 민간 외교관이다.
남편이 외국인을 상대하다보니 내 생활에도 변화가 오며, 자연히 영어가 필요했다. 우리 부부만이 살다보니 외국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받아야 할 때가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남편, 내 나이 68세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여고때 조금 기초 배웠던 게 전부인 나는 ABC부터 시작했다. 책 한권을 가지고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테잎을 들으며, 한마디씩 두마디씩 나를 이끌어 준다.
이렇게 우리 노부부의 새로운 멜로디가 흐르며, 여러 나라 사람들도 만나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들으며 나도 즐겁답니다. 가끔 외국인이 집에 올 때도 있고 또 파-티에도 초대 받을 때가 있다.
‘필요한 말은 배워야지’, 나를 다짐해 준다. 입 안에서만 말하고 입 밖으로 얼른 나오지 않는다. 자꾸만 어렵다. 대화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이 나이에 무슨 영어공부를, 자꾸만 잊어버리는데... 늦더라도 안하느니 보다 낫다고 했다.
어려워도 책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도 잘 가고 잡생각도 나지 않는다. 취미생활도 되고 나의 좋은 친구랍니다.
70세가 되던 봄, 전화로 대화하는 영어퀴즈에서 정답을 맞춰 과분한 큰 상을 받았다. 부산일보에 주 2회 나오는 인터넷으로 배우는 영어도 빠뜨리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 제법 아는 단어가 있어 혼자 해석해 봅니다.
여생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노래 부르며 바뀌는 세월 속에 두루 두루 묻히며, 그렇게 이렇게 밝게 웃으며 살리라.
울고 웃는 우리 인생, 바르게 살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지. 아름다운, 멋있는 여생을 심고 가꾸며, 둥글게 둥글게 안으며 안기우며,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다정한 모습으로 취미생활과 보람을 함께하며 여생을 보내는 우리 노부부.
칠순 때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부부란 연으로 함께한 47년간 세월, 소박한 아름다움에 젖어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해 봅니다.
나의 영어 공부
내 나이 칠십. 68세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이 외국인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히 내가 영어가 필요했다. 부부만이 살다보니 전화가 걸려오면 받아야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남편. 자꾸만 어렵다, 대화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책에서 요점인 제목만 외웠는데 지금은 한줄, 한줄, 읽고 또 읽어본다. 반복해 자꾸만 듣는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한마디씩, 한마디씩.
Slow and steady win the race.
꾸준히 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Better late than never.
늦더라도 안하느니 보다는 낫다.
이 나이에 무슨 영어공부를? 자꾸만 잊어버리는데.
I'm really getting old.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말 한마디, 두마디 하고 나면 흐뭇하다. MBC -FM 의 Let's go English도 듣고 있다. 지난 봄 전화로 대화하는 퀴즈 정답 맞추기에서 과분한 대상을 받았다. 주 2회 신문에 나는 영어회화 공부도 하고 있다.
어려워도 책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도 잘 가고, 잡생각도 나지 않고, 취미생활도 되고, 나의 좋은 친구다.
매일같이 읽어보는 좋은 격언 몇 마디.
☆ Honest is the best policy.
정직은 최고의 정책〈방책〉이다.
☆ Our lives are not about knowledge,
our lives are about wisdom.
사람은 지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다, 지혜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 Let's praise each other.
서로 칭찬 합시다.
☆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넘치는 것은 모자람 보다 못하다.
☆ Don't be greedy.
욕심 내지마.
☆ Nothing comes free.
☆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세상에 공짜는 없다.
☆ Life is what you make of it.
사람은 자기하기 나름이다.
결혼 피로연때 불렀던 노래 (1954. 12. 24)
A Garden In Italy
- 신랑이 불렀던 노래
Come to my garden in Italy.
And sing to me Like you used to do.
Come with your serenade, dear
Were soft and restrained, dear
The moon is waiting.
And I am waiting for you.
이태리의 정원에서
나의 창가로 오세요, 그대
그리고 항상 부르던 그 노래를 들려 줘요.
부드럽고 감미로운 그 소야곡을
저 밝은 달빛 아래서,
나는 달님과 함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께요.
You are My Sunshine
- 신부가 불렀던 노래
You'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ove you.
So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당신은 나의 태양
당신은 오직 하나 뿐인 나의 사랑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줘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당신은 결코 알지 못 할 거예요.
언제나 나를 사랑 해 줘요.
* 위의 두 곡은 지금도 부르고 있다
제 4 부
부군의 자원봉사
부군의 자원봉사
부산시 통․번역 자원봉사 + 외국인 한글교실
+ 김해공항 국제선 안내 데스크
남편은 교직에서 정년퇴임 하시고 영어로써 자원봉사를 하신다. 일주일에 하루는 외국인에게 우리문화와 한글을 가르치고, 하루는 김해공항 국제선에서 안내하신다.
당신의 영어회화는 젊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용기를 준다. 금년 76세, 그 연세하며 부러워한다. 그냥 있었어는 안되겠다는 생각은 나도 같았다. 부산광역시 자원봉사 센터 영어 통․번역 봉사회 회장으로 계신다. 이 시대에 영어는 필수적이며 자원이다. 당신의 취미생활과 보람을 함께하며 이 얼마나 값진 여생입니까.
내 생활에도 변화가 오며, 우리 노부부의 새로운 멜로디가 흐른다.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듣고 나도 즐겁답니다. 또한 맡은 일에 책임이 있어 열심히 임하는 자세가 훌륭합니다.
좋은 일 하시는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건강이 허용하는 날까지 봉사하시겠다고 합니다. 서로 돕고 삽시다. 귀한 대접도 몇 번이나 받았지요. 돌고 도는 세상이치, 내가 준만큼 받는다고 했지요.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아름다운 마음을 주고 행복한 후일을 기약합니다.
* 남편의 자원봉사 활동의 일부를 소개 하겠습니다.
1. 한글서당소식
-자원봉사신문에서 발췌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영어 통ㆍ번역 봉사단 회장 차윤명
영어 통ㆍ번역 봉사단 한글서당은 지난 1997년 11월 선생님 2명과 외국인 1명으로 문을 열었고, 그 동안 네 돌을 맞이하였다.
지금까지 약 500여명의 외국인이 이 곳을 찾아 한국말과 문화를 공부하였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 30여명의 한국인 선생님들(자원봉사자)이 세계 여러 영어권 나라에서 모인 27명의 외국인들(학생)에게 1대1로 지도를 하는 좋은 배움의 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도하는 것은 한글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에 관한 정보도 알려주고, 또한 한국의 속담과 격언 그리고 노래도 배우며, 정기적으로 함께 여러 곳을 직접 답사하며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등의 좋은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외국인들과 함께 송편을 만들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30여명의 한글서당 선생님들이 정성스럽게 재료를 준비하여 학생들과 함께 송편을 만들었다.
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는 과정에서 시작하는 송편 만들기에 외국인들은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심히 바라보다가, 직접 송편을 만들어 보았다.
“예쁜 송편을 만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 라고 했더니 매우 열심히 만들었다. 드디어 우리가 만든 송편이 익었고, 접시 위에 차려진 직접 만든 송편을 먹으며 웃는 외국인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지난번 설날을 앞두고 세배하는 법을 가르쳤더니 장난하기를 좋아하는 Scott(미국인)이 “세배하면 세뱃돈으 줍니까?” 라고 해서 한바탕 웃고 나서 윷놀이와 제기차기를 하면서 즐겼다.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문화 유적 탐방’에서 복천동 박물관을 견학했던 적이 있었다. 전시된 가야 유물과 시립 박물관에서 옮겨온 전시물들을 통하여 한국역사의 일부를 보여 주었다.
그러던 중, 역사에 관심이 깊은 William(미국인)이 한 유물 앞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지리 선생님을 하셨던 한글서당 선생님이 다가가자 질문을 하였고, 선생님이 가야 유물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을 때,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자원봉사자들과 외국인들은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만은 아니다. 우리는 한글서당 밖에서는 친구고 이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외국인들이 낯선 이국 땅에서의 생활을 안내하는 역할도 도맡고 있다.
한국에 온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Dennis(캐나다인)가 컴퓨터를 사려했던 적이 있었다.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Dennis 부부와 함께 컴퓨터 매장을 다니며 컴퓨터를 고르고, 가격을 비교하고, 구입하기까지 책임지고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글서당 최초의 학생이며 4년간 열심히 공부한 Jamie(미국인)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어느덧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송별회를 통하여 석별의 정을 나누며 아쉬워했었다.
미국에 있는 Jamie는 가끔 한글로 이-메일(e-mail)을 보내온다. 한글서당에 이어서 미국에서도 한국어와 문화를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대학의 한국어학과에 등록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어 공부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한글서당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 할 것이며, 계속해서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홍보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그리하여 부산광역시 자원봉사센터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각 구의 자원봉사센터에도 한글서당이 설치되어,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외국인에게 한글 및 한국문화, 풍속 교육
- 자원봉사 회보 30호에서 발췌 (2003. 5)
- 부산광역시 자원봉사센터 영어통ㆍ번역봉사단 고문 차윤명
♠「한글서당」 발대
1997년 11월 23일, 외국인에게 한글을 지도하고 각종 영어 통ㆍ번역 지원을 목적으로 부산광역시 자원봉사센터 소속 ‘영어 통ㆍ번역 봉사단’이 발대되었다.
그 때, 봉사자(한국인 교사) 몇 사람과 외국인 학생 한 사람으로 주 활동분야인 ‘한글서당’도 함께 문을 열어, 외국인에게 한글지도 및 한국의 문화와 풍습에 대한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5년 반의 세월이 흐른 지금, 봉사자 30여명과 세계 곳곳에서 온 외국인 학생이 30여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되었다.
♠ 활동상황
1) 한글서당 교육내용
'한글서당'은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일대일로 지도하는 세계에서 둘도 없는 훌륭한 배움터이다.
한글뿐만이 아니고 우리의 역사와 전통, 문화, 노래 등을 가르치며 정기적으로 고적과 문화유적을 답사하여 현장교육을 하는 한편 서로간의 친목도 도모하고 있다.
2) 대외봉사활동
평소 각종행사나 활동에 꾸준히 통ㆍ번역봉사를 해 왔으나, 작년(2002년)에 있었던 여러 국제행사 때에는 정말 잊지 못할 눈부신 활약을 했다.
특히 제1회 AVA아시아 태평양지역대회 때는 한글서당의 미남, 미녀 회원들과 외국인 학생의 3박 4일간의 사회진행, 회원들의 통역봉사, 월드컵 및 아시안게임의 향토사랑 캠페인(PSB TV 7˜9월 방영) 출연, 아시안게임, 아태장애인 경기대회, 합창올림픽 통ㆍ번역 봉사…, 회원들의 노고가 정말 대단했었다. 그 후 감사의 전자우편(e-mail)을 당시 도움을 받았던 외국인들로부터 많이 받고 있다.
3) 문화 풍습교육
구정을 앞두고 설날체험으로 한복과 설음식, 세배하는 법 등을 가르쳤고,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쟌(대학교수)은 “세배하면 세뱃돈 줍니까?” 라고 해 웃음바다가 되었다. 또 정월 대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스캇(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만 둘을 두고 있는 대학교수)이 “올해는 예쁜 딸을 낳도록 빌어야겠다.” 며 소원을 토로했다.
동백섬의 최치원 동상 및 기념비와 해운대 석각 견학 길에 해운대 해변에서의 널뛰기, 투호 던지기, 윷놀이 등은 매우 반응이 좋았다.
초파일 전날 삼광사를 탐방, 불교 공부와 절의 점심식사를 대접받은 후, 형형색색 달려있는 연등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외국인 학생들의 하는 말은 “정말 아름답다.” 였다. 내려오는 길목의 동동주(탁주) 집에 가자는 간청을 들어주었더니 어디서 듣고 배웠는지 “동동주 맛 죽여주네!” 라 하여 모두 웃었다.
추석을 앞둔 토요일, 송편 만들기를 했다. 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하는 것부터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심히 바라보다, “예쁜 송편을 만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 고 했더니 모두 열심히 만들었다. 직접 만든 송편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외국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4) 고적 및 명소탐방
충렬사를 참배하고 임진왜란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일본인 학생인 미와가 자기네 조상들의 만행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마침 그날 전통 혼례식이 있어서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옛 풍습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돌아오는 길에 전통음식인 동래 파전을 맛보기도 했다.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묘지 참배 때, 외국인 학생들의 묵념 태도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우리와 같았다.
그 외 김해박물관, 동래 복천동 박물관, 민주공원, 통도사, 범어사 등등 많은 곳을 탐방하였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곳을 견학할 것이며, 언젠가는 한글서당 출신인 제이미와 메리앤이 초대하는 미국으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다.
5) 민간외교 역할
한글서당을 거쳐 조국으로 돌아간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자주 메일을 보내오는데, 제일 반가운 것은 한글로 쓴 것이다. 약 5년간 공부하다 미국으로 돌아간 제이미(Jamie)는 한국이름이 이재민인데 몇 일전에 보낸 편지에 “안녕하십니까 차선생님, 저는 이재민입니다. … (중략) … 안녕히 계십시오. 이재민 올림” 이라 썼다.
미국에 있는 킴버리, 호주에 있는 에이미, 캐나다의 토니, 일본의 나까자와, 중국, 대만,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전해오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우리 한글서당이 이제는 전 세계에 알려졌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더욱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소개로 부산에 있는 외국인들이 찾아와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 한글서당의 지향점
우리들은 피부색은 다르나 선생님과 학생만의 관계가 아니고 다정한 친구이자 이웃이며 낯선 땅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또한 한글서당을 통한 민간외교의 교량역할에도 힘을 다할 것이다. 특히 부산시내 곳곳에 「한글서당」과 같은 배움터가 생겨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와 풍속을 알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사람의 삶
- 한글 전수 바쁜 ‘국제서당’ 훈장
- 외국인 ‘한글지도’ 자원봉사자 차윤명씨
☆ (2003. 6. 30 국제신문 27면 기사)
부산에서 8년째 영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차윤명씨. 올해 나이 일흔다섯. 현역 외국어 통역 자원봉사자 중 최고령.
(영어통역 자원봉사자인 차윤명씨가 지난 6월28일 부산 동구 초량3동 부산시자원봉사센터 ‘한글서당’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에게는 무료 통역봉사도 중요하지만 더 소중하고 값진 일이 있다. 한글과 한국 문화, 부산사람의 따뜻한 정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치고 알리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 이, 삼, 사…, 하나, 둘, 셋, 넷…, 백, 천, 만…, 오륙도…”
주말인 지난 28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3동 부산시 자원봉사센터 내 ‘한글서당’. 30여 평 강의실에는 파란 눈의 남녀 20여명이 ‘훈장’의 발음을 따라하며 한글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훈장은 바로 차윤명씨.
한창 수업열기가 달아오를 무렵 그는 칠판에 ‘15’를 썼다. 이어 그가 “십오, 열다섯. 내 나이다. 인생은 육십부터 아닌가. 그래서 나는 가장 젊은 선생님이다” 며 농담을 하자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 학생은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영어강사 또는 유학생, 상사 주재원 등.
차씨는 이 한글서당의 창설 멤버이자 대표다. 처음 문을 연 1997년 11월부터 줄곧 일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두 시간씩 강의가 열리는 서당에는 한국인 선생 20여명이 있다. 차씨의 30여분 강의가 끝나면 학생과 교사간 1대1 수업이 진행된다.
“전원이 자원봉사자이며 수업료도 없습니다. 비용은 각자가 내는 월 3천원의 회비로 충당하지요.” 지금까지 이 배움터를 거쳐간 외국인은 20여개국 500여명에 이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을 묻자 차씨는 “미국인 제이미, 한글서당 최초의 학생이다. 나와 부자지간처럼 지냈거든, 4년여 있다가 지난해 귀국했는데 꼬박꼬박 한글로 편지를 보내오지. 최근엔 미국 대학의 한국어과에 등록했다” 고 소개한다.
제이미 뿐 아니다. 부산생활을 잊지 못해 e메일과 편지를 종종 띄우는 미국인 여성 마리안과 킴벌리,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 일본에 돌아가서도 대한항공 오사카 지점에 근무하며 부산에 오면 꼭 연락하는 나카사와, 친딸같이 대해 준 데 감사하며 편지 때마다 ‘Korean father(한국인 아버지)’라고 부르는 덴마크의 여대생 루이 - -.
이들 모두 한글서당과 통역 봉사를 통해 알게 된 제자이거나 친구들이다. “이만하면 인터내셔널 파더(international father) 아닌가” 라며 그는 환하게 웃는다.
부산 토박이로 부산고,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한 차씨의 전직은 교사. 40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1995년 정년퇴임한 그는 “한평생 국가의 녹을 받았으니 이젠 사회에 환원하자는 뜻에서 자원봉사를 결심했다” 고 말한다.
한국전쟁 때 미8군 통역사로 근무했고, 일어에도 능통한 그는 매일 두 시간씩 영어공부 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쉬는 날에도 그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e메일 답장을 보내고 한글서당의 강의 재료를 손수 준비한다.
아들만 넷을 둔 그는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건강비결을 묻자 “별다른 게 있나. 일하는 게 가장 좋은 보약이지. 힘닿는 데까지 자원봉사를 계속 할거야” 라며 사람좋게 웃었다.
부군의 TV 출연 및 신문기사
※ 1988. 8 - 1988. 9 : 한달동안 오성식선생의 사회로 진행되었던 KBS FM1 ‘Good morning pops’(06;00~07:00) 영어 회화 방송의 ‘이럴땐 영어로?’ 란 코너에 부부가 함께 출연.
※ 2002. 7 - 2002. 9 : 매일 수차례씩 PSB TV의 향토사랑 캠페인(아시안 게임) 방송에 출연.
※ 2002. 10. 14 : KBS 1 TV 아시안게임 1주년 기념 방송에 출연
※ 2003. 6. 30 : 국제신문 27면 기사
- 한글 전수 바쁜 ‘국제서당’ 훈장
- 외국인 ‘한글지도’ 자원봉사자 차윤명씨
※ 2003. 12. 4 : KBS 1 TV ‘생생 투데이’(오후 5:45~ 6:00)에서 자원봉사 활동사항이 방영됨
.
※부산 KBS ,MBC, PSB, 교통방송, 평화의 소리방송등 라디오 방송에 자원봉사 관계로 여러차례 인터뷰를 했음.
저자 약력
1929. 11. 15 부군 차윤명 출생 (부산 동래)
1932. 3. 29 저자 출생 (부산 동래)
1951 동래여고 졸업
1954. 4. 부군의 교직 부임(온양국민학교)
1954. 12. 24 부군과 결혼, 남창에서 첫살림
1956-1968 슬하에 4남(동수, 동욱, 동혁, 동하)
출생
1989, 7. 1 부군의 회갑을 축하하는 ‘부부 영상
편지’가 당선(부산 MBC TV 방영)
1995. 2. 28 부군의 교직생활 정년 퇴임
1997 - 현재부군께서 ‘한글서당’을 비롯한 활발한
자원봉사활동 중
2002. 3. 29 부산일보 글마당(운문부)에 ‘봄’ 당선
2004. 12. 24 결혼 50주년을 맞음. 현재 슬하에 자식 넷, 며느리 넷, 손자, 손녀 여덟을 둠.
어머님께 드리는 글 (I)
일편단심 아버님을 내조하시고,
아들 넷을 위해 평생을 보내신 어머님.
이제 황혼에 접어들어 한평생 결실을
한권의 책으로 펴내심에 축하의 말씀 올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 사랑이고
그 사랑은 끝이 없다고 합니다.
한 구절, 한 글귀를 찬찬히 음미하면서
그 속에 배어있는 어머님의 깊은 뜻을 생각해 봅니다.
가없는 사랑으로 키워준 은혜에 감사드리옵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아버님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기념시집이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아버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형제들에게도 수고의 말을 전합니다.
큰아들 올림
어머님께 드리는 글 (II)
結婚 후 바쁘신 생활 가운데 틈틈이 쓰신 어머님의 글을
詩集으로 발간되어 정말 기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詩集 발간을 위해 원고 및 내용 정리를 위해
힘써주신 아버님과 출판을 위해 끝까지 수고하신 동생
혁이 에게도 감사 합니다.
저희 남자 4형제 키우시면서 때로는 자신이 女子인 것을 잊고
살아오신 어머님.
그리고 항상 자식과 남편을 위해 노력하시고 世上을 올바르게,
그리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된다고 하신 어머님의
가르침을 항상 가슴속에 銘心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甲申年 한 해를 보내고
乙酉年 새해를 맞이 하면서 행사하는 부모님
金婚式과 더불어 가지게 되는 어머님의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祝賀 드립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새 세월은 흘렀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행복 속에서도 후회 없이,
그리고 열심히 一生을 살아오신 아버님 어머님께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며 남은 생애 건강하고 幸福하게
살아 가시기를 所願합니다.
둘째 아들 올림
순수하고 소녀 같은 어머님, 인자하고 화내는 모습을 한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아버님,
결혼 5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버님 어머님은 저희들에게 교과서이자 거울이었습니다.
저는 아버님 어머님 같은 삶을 살기를 늘 기원하고 있답니다.
부끄럽지 않는 자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지금의 좋은 모습 오래오래 보여주길 기원합니다.
둘째 며느리 올림
유난히 따스한 겨울입니다.
벌써 2004년 한해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바빴고 많은 일이 있었던 한해,
이제 2005년을 맞이하고 또 새로운 다짐을 다질 때 입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되겠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언제나 다정하신 두 분
항상 좋은 이야기 해주시는 두 분
결혼 50주년과 할머니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손녀 승민 올림
할아버지 할머니 결혼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아, 그리고 할머니의 시집 발간도 축하드려요.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손자 지현 올림
어머님께 드리는 글 (III)
먼저 아버님, 어머님의 결혼 50주년과 어머님의 글
모음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생활을 통해서 삶의 성실함을 몸소 보여주신 어머님께서
이제는 그동안의 생활이 녹아있는 글을 통해서
인생살이의 이치를 말해주시는 듯 합니다.
이 글을 읽어볼수록 그 속에 녹아있는 어머님의 삶의 진솔함과,
인생을 바라보는 깊은 지혜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살아오며 보아왔던 분이 저의 어머니로서의 ‘황정순’이라면,
이 글을 통해서는 원숙한 삶의 통찰자로서의
‘황정순’을 만나게 됩니다.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여러 번 고개를 넘으며
때로는 거센 풍랑에 힘들어하면서도,
삶의 기쁨과 소망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묵묵히 한걸음씩
자신의 일을 다하는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참으로 감동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이제는 저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로써 뿐만 아니라,
인생의 길을 먼저 훌륭히 걸어가신 선배로서 존경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님,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셋째 아들 올림
어머님께 드리는 글 (IV)
제가 군에 있을 때였습니다.
집에 오니 어머님이 책을 보고 계시더군요.
저를 보시고는 읽던 책을 치우시며,
옆에 있던 공책 한 권을 주셨지요.
틈틈이 적은 글들인데 어떠냐며,
틀린 곳은 없냐구요.
10년도 전에 이 책에 대한 초고는
벌써 그렇게 준비되어 있었지요.
예전 양정에서 하시던 문방구를 정리하시고 남았던
누렇게 낡은 공책에 쓰셨던 글들…
,
투박한 글씨, 이따금씩 맞춤법에 틀린 문장,
세련되지 못한 표현들.
어머님 글에 대한 첫 기억은 솔직히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글들이 책으로 출간될 수
있을거라며 말을 맺었지요.
10년도 더 지난 지난 늦가을,
어머님의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일일이 그 글들을 컴퓨터에 입력하신 거지요.
글이 바뀌었을까요,
읽는 제가 바뀌었을까요.
한 장 한 장 읽어가는 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구나…
이런 말들을 우리에게 해 주고 싶으셨구나…
어머님의 生이, 어머님의 가르침이
꾸밈없이, 참으로 솔직하게,
고스란히 그 안에 있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어머님이 아프셨습니다.
얼굴도 많이 헬쓱해지셨구요.
남들보다 늦게 말썽을 부린 치아(齒牙)가 문제였지요.
다행히 이제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아버님의 정성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치과(2부 마지막글)"라는 글을
제일 기쁘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없던 글이 이번에 새롭게 추가되었더군요.
" … (중략)…
남편의 지극한 정성으로
나는 일어섰다.
내 마음은 설레인다. "
설레이는 것이 어찌 어머님 마음뿐이겠습니까..
"인생득의수진환(人生得意須盡歡)"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그 뜻을 이루었을 때에는 남은
인생을 최대한 즐기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마음속에 행복을 담고 계시니 어머님은
그 뜻을 이미 이루신 게 아닌가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모두 건강하시어
오래도록 저희 자식들에게 그 가르침을 주시고,
그 가르침으로 60주년 회혼식(回婚式)도 모셨으면 합니다.
막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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